leehyungin
이형인
(리치몬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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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leehyungin

 
 
여보! 오늘 저녁상은 뭘 차릴까? 저녁시간만 되면 행복한 걱정이다. 반찬 준비로 상차림을 하기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잖은가. 신경 쓰고 마련될 상차림을 아내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런 오퍼를 주고 받은 지 몇 년 되었다. 처음 오퍼엔 두 귀를 의심했단다. “아니 웬일로! 당신이”. 


“그 많은 세월 동안 끓이고 지지고 볶고 삶아서 온 가족 먹이고 치다꺼리 하느라 얼마나 애 쓰셨수! 이젠 한끼나마, 저녁을 내가 하리다.”


의심하며 놀랄 수밖에, 상상조차 안 해본 남편의 변화였기에 놀라웠겠지, 해봐야 뻔할걸 하며…


“맡겨봐요. 이 사람아, 중학교 때부터 자취생활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야. 했다 하면 당신 근처엔 못 갈지라도, 그런대로 밥상 차릴 수 있을걸”


돌아서는 아내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보였다. 숨겨진 지극한 아내의 사랑을 지금까지도 닭살 돋아 부끄럽다고 감춰가면서…


수 십 년을 가족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 헌신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다. 온타리오 호숫물보다 더 많이, 짜증도 투정도 괴팍함도 신경질도 부리면서, 밥숟가락 놓고 돌아서면 무슨 말을, 무슨 투정을 토했는지 알 수 없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흰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눈가에 솔잎처럼 주름살만 늘어가는데, 우린 함께 이렇게 세월에 실려간다.


팔불출이 되려나? 자식자랑은 칠뜨기요. 아내자랑은 팔불출이라 했던가? 팔불출이라도 할 이야긴 해야겠다.


이 글을 읽고 부엌을 가까이하는 남편들, 한두 사람만 늘어도 의미는 충분하겠기에, 어쩜 사랑스런 미소가 꽃 향기처럼 부엌에 가득해진다면, 글쓰는 목적은 달성했지 않는가! 뭘 더 바라리요! 그의 아내는 내 글을 읽고 또읽을 터이니 말이다.


이 시대의 유명한 쉐프들은 거의 다 남자다. 은막의 여왕 소유진의 눈빛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 요식업계의 황태자 백종원씨, 나이차 같은 것도 필요 없는 위력을 지닌 직업이 요리사가 아닌가!


 나와 함께 라운딩하는 ‘롼콜’이란 골퍼는 오후엔 집에 가서 뭐하느냐고 물었던 어느 날 "저녁준비를 한다."고 했다. 놀랍고 신비했다, 한국남자들에겐 좀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는 겸업(?) 임에 틀림없다.


평생 그랬단다. 대단함의 극치다. 존경스러웠다. 그때부터 ‘롼콜’이란 골퍼가 위대한 가장이요, 멋진 남자로 보였다. 다음 홀부턴 어지간한 거리는 기부를 줘야지…! 
“여보.! 미역국을 끓일까? 카레를 할까? 어묵국에 두부찌게는?”


간단히 식품점에서 이미 끓여 파는 플라스틱통 김칫국, 갈비탕, 감자탕, 어묵국 모두 먹어봤다. 맛내려고 아낌없이 퍼넣은 화학조미료 맛이 혀끝을 자극함은 물론 뱃속이 우글거려서, 그만둔 지 오래다.


민어를 굽고, 계란찜을 할까? 김치찌갠 어떨까? 어제 먹다 남은 수육이 있잖아, 내가 그 동안 터득했던 메뉴들이다. 요리도 아니고 뭐 그냥 주섬주섬 섞어찌게도 나에겐 훌륭한 정찬인데, 묻고 또 물어 저녁상을 챙긴다. 그때마다 참기름이 빠졌고, 된장을 풀어야 하는데 어쩌고, 생강이 빠졌고, 마늘이 덜 들어갔고, 냉장고에 잔뜩 있는 버섯은 언제 먹으려고 빼뒀는가? 잊었는가? 아끼는가? 


 참기름은 미역국에 넣어야 고소하고, 마늘을 넣으면 건강에 좋다지만, 깔끔하고 담백함이 도망가버린단다. 카레엔 닭 가슴살을 살짝 볶아 넣으면 풀리지 않아 씹는 맛을 돋군단다. 


몇 년간은 수학공식을 외우듯, 촉각을 곤두세우며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태웠다. 국어는 능통했는데, 과학이나 수학을 하려니 힘들 수밖에, 아! 이런 게 시집살이였구나! 새삼스럽게 주부들의 비애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되새긴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간혹 수육엔 된장을 풀어야 돼지냄새를 제거한다는 걸 깜박할 때가 있다. 바로 어제도, 팔팔할 때 고국 떠나 배우긴 뭘 배웠을까? 부엌 살림살이 쳐다 도 안보고 소녀 티로 해외로 떠돌아, 서방을 만난 그 시절, 먹을 줄만 알았지, 간 소금조차도 할 줄 몰랐었는데, 남편 만나 애들 낳아 교육시키며 한평생 가정 뒷바라지하느라, 손등에 문풍지 같은 주름살로 다 늙어 버렸구먼… 쯔쯔


모른 척 너무했지만, 이제라도 고마움에 가냘픈 손길 어루만지며 준비된 저녁상을 아내와 함께하리.


 산 넘고 물 건너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경기도, 이 산 저 산 지역마다, 이북 땅 각지방마다, 골짜기마다 맛과 풍습이 다 다른 고장이 우리 고향 땅 대한민국이다. 지극히 토속적 전통을 이어져왔던 수백 년 이 역사는, 음식 맛 하나 만으로도 얼굴빛을 가려낼 줄 아는 지혜가 담겼다.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청주 소주 막걸리 모두 다 다른 내음 속, 그래도 핏줄은 단일민족 이라는데, 왜? 그토록 음식은 다 다른 맛이었을까? 광활한 이 북미주엔 프렌치프라이와 헴버거면 끝내준다는데…


 가라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보! 냄새가 끝내줘요.” 몇 시간 바람 쐬고 저녁시간 맞춰 들어오는 아내의 흐뭇하고 행복한 목소리가 쉐프의 기분을 짱! 하게 돋군다. 가정이, 삶터가, 사랑의 묘약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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