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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leed2017

 
 한국 E 여자대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하루는 대학 후문에서 시내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늙수그레한 택시기사가 느닷없이 "선생님한테서 노인 냄새가 나네요." 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날아오는 축구공에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것처럼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비록 내게서 노인 냄새가 난다 해도 나는 자기 손님, 꾹 참고 아무 말도 않는 게 기사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기사는 어느 향수회사 선전원인가, 거침없이 말을 쏟아 놓는 것이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30년 가까이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입에서 나는 냄새는 물론, 옷에서 풍기는 냄새에도 여간 신경을 쓰고 살아온 게 아니다. 한때는 입에서 나는 냄새는 양치를 게을리해서 그런 줄 잘못 알고 하루에 양치질을 열 번 넘게 한 적도 있다. 


 그러니 김치나 된장같이 냄새도 독특한 음식은 주말이 아니고는 좀처럼 입에 대질 않았다. 이렇게 냄새에 신경을 쓰다가 냄새의 천국 한국엘 가서 처음 며칠은 아침에 출근 버스에 오르면 실로 형용하기가 어려운 여러 가지 아로마(aroma)가 나를 질식시키다시피 할 때도 있었다. 버스에 오른 승객들의 그날 아침 식단의 90%는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옆 승객은 생선구이, 저기 저 승객은 김치찌개, 저쪽에 앉아 있는 노인은 마늘종…


 이렇게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30년 넘게 무취성(無臭性) 식단을 지키며 ‘문화적 노예생활’을 해온 것만도 원통한데 노인 냄새라니! 나이 어린 여학생들 앞에서 노인 냄새가 난다면 유배를 와서 사약(賜藥)을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종이품(從二品)의 대신 꼴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날로 아내에게 얼굴에 바르는 크림과 향수를 사달라 부탁해서 아침에 출근할 때면 얼굴에 크림으로 도배를 하고 집을 나서곤 했다.


 사람이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동양과 캐나다, 미국, 영국을 대표하는 서양 간에 뛰어넘을 수 없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러나 냄새는 생리적인 현상이라서 그럴까, 양(洋)의 동서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이런 공상을 해본다. 노인 냄새 대신 사람도 사향(麝香)노루처럼 오묘한 향기를 내뿜을 수는 없을까. 그게 가능한 날이 온다면 사람이 악한 마음을 품으면 불쾌한 냄새를, 착한 생각을 하면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착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 여행이라도 가면 어딜 가나 그윽한 향기가 진동할 것이고, 악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 가면 고약한 냄새가 여행자를 괴롭힌다고 상상해보라. GNP니 GDP니 하는 경제지수가 무슨 필요가 있으랴. 사람 몸에서 풍기는 향기 하나로 그 나라가 지옥인가 천당인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을!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음을 키나 몸무게를 재는 것처럼 직접 측정하지는 못한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예로,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남의 물건을 빼앗아 가는 행동을 보고 우리는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악하다는 추측을 한다. 자동차에 인공기를 달고 가면 그 사람이 북한을 숭모하는 사람이라고 추측을 한다. 그러니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마음은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을 두고 사교적이니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니 떠들 때가 있다. 행동을 보고 속마음을 추측하는 데서 오는 잘못 때문이다.


 나도 비슷한 잘못을 저질러 볼까. 내 생각에 아마도 다음을 노래한 시인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지 싶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위의 마흔여섯 자의 노래를 읊은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나와 처음 마주쳤을 때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고, 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해도 또 한번 빙그레 웃고 말 것이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사람-. 구름 따라 물 따라 떠다니는 운수행각(殞首行脚)의 방랑자인가. 그는 산과 들에서도 여유롭고, 돈 많고 권세 높은 사람 앞에서도 여유롭고 태평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냄새니 향기니 하는 것도 결국에 가서는 각자가 풍기는 개성이랄까 인격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201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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