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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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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길을 건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그래도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을까? 소설 속의 제인 에어는 방황하다가 로체스터에게 다시 돌아왔잖은가? ‘제인 에어’가 고아소녀의 사랑과 성공이야기라면 ‘폭풍의 언덕’은 고아소년과 주인집 딸과의 격렬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명작이다.


저자 샬롯 브론테의 실제 인생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고 어둡고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동생 에밀리는 30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샬롯은 39번째 생일을 앞두고 임신한 채 죽었다. 명작은 고통과 불행 속에서 태어나는가 보다. 


트럭 운전 중에 에어(AYRE)에서 만난 커피숍의 그녀는 나에게 조그만 선물로 빨간색 커피머그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름도 성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내 기억 속에 슬픈 제인 에어로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 하늘 아래에 가서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했다. 만약에 북아메리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 그럴리야 있겠냐먀는 인연은 또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있기를 은근히 기대해본다. 


그 후로 해가 바뀌고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개리슨 미군기지가 있는 데븐스를 다시 가게 되었다. 매사추세트주의 보스톤 바로 옆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 제인을 만난 에어 타운을.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마을에서 본 한국식품점, 미니슈퍼마켓 그리고 다방이라고 써 놓은 커피숍, 그리고 제인.


세월이 흘렀어도 그 가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 물론 제인 에어는 그곳에 있을리가 없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강하게 남아있다. 술에 취해 내 침대에 쓰러졌던 그 몸매, 그리고 쇼핑센터에서 화려하게 변신했던 산뜻한 그녀의 모습, 검은색 쫄바지에 드러난 엉덩이 곡선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도저히 그곳에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궁금하고 혹시라도 지난 2년 동안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태워준 범인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는 않았을까? 그 외삼촌 아니 대령출신이라던 주인아저씨는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설마 나를 알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가 앞 길가에 트럭을 세웠다. 슈퍼마켓은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다방이라고 쓰인 커피숍은 불이 꺼져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트럭을 나와 한국 식품점으로 들어갔다. 아줌마가 카운터에 앉아서 한국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커피숍이 오늘 쉬는 날이에요?”


내가 어색함을 누르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쉬기는. , 문 닫았지.”


“어? 왜 문 닫았어요? 장사가 안 되었나요?”


“이 대령님이 자기 건물인데 장사 안 된다고 닫을리가 있나? 그 놈의 망할년 때문이지.”


“네에!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아, 글쎄. 한 이태 전에 일하던 젊은 여자가 싹 발라가지고 도망갔어. 오갈 데 없는 처지라고 해서 이 대령님이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먹고 살게 해 주었는데 그 여시 같은 년이 금고까지 털어서 하룻밤 새에 귀신처럼 사라졌지 뭐야. 글쎄. 하, 나 참 세상에 별일이 다 있었어. 임신중절로 애까지 낳은 여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봐 주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그년 짐승만도 못해. 세상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 요즘은 한국 사람이 더 무서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조카라고 안했나요?”


“조카는 무슨 얼어 죽을 조카? 금고를 열고 금반지 패물은 물론 퇴직금 몽땅 훔쳐 달아났다고. 그래서 지금 이 대령님은 집에 없어, 화병이 나서 그 년을 잡겠다고 미국 땅을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고 있어. 당연히 커피숍도 닫았지.”


하늘이 하얗게 변했다. 세인트 마리님,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젠장,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나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바보천치다. 트럭으로 돌아온 나는 빨간 커피머그잔을 꺼내 돌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깨졌다. 결코 억울하고 분한 내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이런 천하에 바보같으니……. 제인 에어! 아메리카 대륙 어느 구석에 숨어 있어도 내가 반드시 잡아내고 말 것이다. 잡히기만 해라!’


그 후로 나는 운전하다가 검은 색 쫄바지를 입은 여자만 보면 반드시 돌아보고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아직도 내 망막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엉덩이의 굴곡을 가진 여자, 맨발의 제인 에어를 찾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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