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가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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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까밀로 신부와 공산당 읍장 빼뽀네의 고향을 찾아서(상)
knyoon

 

 창밖에 흐느적거리며 내리는 비가 나뭇가지 위에 꽃봉오리인 양 방울방울 내려 앉는 것을 바라보니, 죠반니노 과레스끼(Giovanni Guareschi 1908-1968)의 고향이며 그의 작품의 주인공인 돈 까밀로와 빼뽀네가 살던 작은 마을을 찾아 밀라노 역에서 파르마행 기차를 타던 날 퍼붓던 그 초겨울 날의 빗발이 생각난다.


그날, 신부 시리즈를 쓴 과레스끼에 흥미가 있던 밀라노 교구의 파드레 송이 바쁜 시간을 내어 빠르마에 함께 가 주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기차 안은 한산했다.


 나는 카메라와 삼각 받침대를 들고 기차가 설 때마다 복도로 나가 사진을 찍으며 과레스끼가 살던 바싸(Bassa)로 흘러가는 뽀(Po)강이 어디 있나 목을 길게 빼어 찾아보았다. 뽀강은 밀라노에서 가르데 호수로 흘러내려오다가 아름다운 베로나와 만토바를 옆에 끼고 파르마를 지나 베네치아로 흘러간다.


 햇빛이 머리를 빠갤듯이 내려쬐는 에밀리안 평야가 있고, 일찍 날이 저무는 두메에 가을 겨울 없이 내리는 비바람과 짙은 안개, 그리고 사람들의 기쁜 일 슬픈 일들이 바로 뽀 강이 내려다 보이는 바싸 마을의 강둑에서 뒤엉켜 일어난다.


파르마 역에 내리니 정오가 다 되었다. 역 앞엔 우람하게 큰 은행나무가, 사백리 길을 달려온 나그네의 피로와 비 오는 궂은 날씨도 깜박 잊을 정도로 황금빛으로 환하게 맞아 준다. 


우리는 택시 정류장에서 팔짱을 끼고 한가롭게 서 있는 한 기사에게 폰타넬라로 가자고 했더니 그런 곳은 모른다며 태워주지 않는다. 모르는 길도 아른 체 나서는가 하면 아는 길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이탈리안 기질인 듯 해서 택시 타기를 단념하고 우선 은행나무 아래 핏자집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마치 작전상 후퇴한 용사들처럼 다시 기운을 차리고, 식당 주인이 내주는 예쁜 거울이 든 성냥갑을 요술무기인 양 주머니에 잘 간직하고 택시를 향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엔 질문을 바꾸어 과레스끼라는 작가가 살던 집을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대뜸 왜 과레스끼를 찾지 않고 폰타넬라부터 찾았느냐고 휘파람을 휙 불며 택시에 타라고 했다. 한 시간 전에 물었던 바로 그 기사였다.


쥬세뻬 베르디의 고향인 레 론콜레까지만도 12킬로미터나 되고, 과레스끼의 집은 그곳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지만 택시값은 편도만 받겠다고 한다. 물론 그곳에 지체하는 시간도 계산에 넣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방금 핏자 집에서 받은 요술장이 빨강 성냥갑을 꺼내어 그 안에 붙어있는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저 기사의 마음을 움직여 놓은 걸 보니 과레스끼를 좋아하는 건 바로 너였구나!” 하고. 


그 기사는 조그만 시골 주막집 같은 ‘과레스끼 레스토랑’ 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앞서 들어가더니 과레스끼의 아들과 손녀, 그리고 마침 와 있던 딸 등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기다리던 손님이나 되는 듯이 우리를 반기는 그들을 따라 들어서니 이미 날은 저물고 적송 빛 나무식탁과 의자 옆엔 호롱불이 매달려 있었다. 파드레 송의 유창한 통역으로 서로 인사가 끝나자, 검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과레스끼의 예쁜 손녀 막달리나가 유명한 토스카나의 붉은 와인 캰티를 내왔다.


알베르또 과레스끼는(46세) 아버지를 닮지 않은 듯 말없이 와인만 권했고, 샬롯테(43세)가 과레스끼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눈매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러 번 눈시울을 적셨다. 


<돈 까밀로가 사는 작은 세상>을 비롯한 7권의 돈까밀로 연작과, 파시즘에 반대하다가 잡혀 독일 포로수용소와 폴란드 수용소에서 지낸 이야기인 <나의 비밀일기 1943-1945>, <던칸과 클로틸다>, <기숙사에 들어간 남편이야기>, <즐거운 나의집> 등 20여권의 소설을 쓴 이들의 아버지 죠반니노 과레스끼는 1908년 그 당시 젊은 사회주의자들의 가슴마다 붉은 손수건이 빛나던 그런 시대에 이 마을에 태어났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와 여행을 많이 하는 아버지의 환타지아적 성격을 이어받은 과레스끼는 론콜레 마을의 음악가 베르디와 절친한 친구사이였단다. 그는 법학공부를 계속할 수없게 되자 파르마에서 유명한 풍자화가나 출판업자가 되려고 단기학교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


지방신문의 교정 보는 일도 했으나 봉급이 너무 적어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할 기회를 놓치고 늦장가를 들었다. 잡문과 가십 난을 맡아 매일 기고 하면서, 집에서도 책상과 씨름하며 지냈으나 아내와 두 자녀에겐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이며 아버지였음을 샬롯데는 강조했다. 샬롯데가 25세 때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담하다고 눈물을 글성였다.


1942년에 세계대전이 나자 과레스끼는 우울증에 빠져 심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방황하던 중 밀라노 경찰에 체포되었다. 지하운동혐의로 서류와 가방을 압수당하고 풀려난 후, 1943년 9월에 그 운동과 격리시키려고 군대에 송환된다. 그 후, 알렉산드리아에서 독일군 포로가 되어 폴란드 수용소에서 1945년 4월까지 그의 생애에 가장 격렬한 시대를 보낸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이야기를 쓴 것이 <나의 비밀일기 My Secret Diary>이다. 나는 서울에서 이 책을 번역해서 출판사에 넘겼는데 책은 완성이 안되고 과레스끼와 내 사진이 든 표지만 가져왔다. <나의 비밀일기>에 두 살 된 딸, 네 살 배기 아들로 등장했던 알베르또와 샬롯데에게 그 표지를 보여주자 모두 기쁜 환호성을 터뜨렸다. 


죠반니노 과레스끼는 포로수용소에서 해방되어 이탈리아에 돌아와 보니 조국은 많이 변했다. 아주 좋은 쪽으로도 아주 나쁜 쪽으로도 변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는 다시 우울증에 빠져 고향에 돌아와 문을 닫아 걸고 그림만 그린다. 정치적인 황폐함이 모든 사람을 무기력,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1946년 성탄 전야에, 그가 기고해 오던 잡지사에 보낼 마지막 페이지를 메꾸다가, 수용소 생활 중 얻은 신념-나는 그들이 나를 죽일지라도 결코 죽지 않으리라-던 강한 모험심이 그의 내부에서 치솟았다. 이 때 ‘신부 돈까밀로와 공산당 읍장 빼뽀네와 그리스도 예수’라는 세 주인공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설립한 주간지 깐디도에 <돈 까밀로와 뻬뽀네의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온 세계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한 수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교황 요한 23세도 돈 까밀로 시리즈를 애독한다는 것을 알고 과레스끼는 그 중 한 시리즈(Compagno Don Camillo ‘신부님 러시아에 가다’의 마지막 장)에 요한 23세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정사를 쓰기도 했다. 가족들도 아버지의 책은 몇 십 번씩 읽었으며, 읽을 때마다 삶의 희망과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과레스끼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벌판과 뽀 강둑 위로 늘 서려 있는 안개와 폭우 속에서 매력 있고 소박하고 너그러우며 유우머 감각이 뛰어난 마을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날부터 연재되는 돈 까밀로 시리즈는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리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수십 나라 말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 큰 열풍을 일으켰다.


묘한 일은 그가 그 마을을 주제로 쓴 단편이 신문에 실리면 얼마 후에 그와 똑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곤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자 빼뽀네가 비행기 안에서의 정치회합에서 인쇄물을 내던지며 반대파에게 괴로움 당하는 이야기가 있다. 빼뽀네는 마침내 기관총을 집어든다. 그러나 비행기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정말 황당한 이야기야.”하고 혼자 중얼거렸는데, 몇 달후 스플림베르그에서 빼뽀네 같은 한 공산당원이 인쇄물이 흩어진 비행기 안에서 총을 쏘아대고 비행기가 추락한, 진짜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난다.


과레스끼는 이 상황에 대해, 자신이 특별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난 일의 상황, 계절, 분위기, 그리고 심리적인 상태를 관찰하는 데서 이런 일이 생기면 저런 결과가 오리라는 상상만 했을 뿐이란 것이다. 그의 심리적인 관망과 관찰은 분명히 예시적인 데가 있었다.


과레스끼는 신학을 공부한 일도 없고, 고작 2,000개의 낱말을 사용하며 기자 노릇을 해왔지만, 그가 복음과 율법에 충실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불의를 못 참는 이상적인 신부님과 그 마을의 공산당 읍장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그려낸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돈 까밀로의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반대 이념을 가진 빼뽀네의 그리스도이기도 하며 작가의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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