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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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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45)-“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6)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이 때 몽산 스님이나 소동파의 경우처럼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리나 상황이 일어나면 그들이 이전 행동 경험으로 학습한 지식이나 논리가 개입될 틈이 없이 그 소리나 상황에 ‘벌거벗은 채’ 노출된다. 이 때 그들은 그들의 선입견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의 ‘진실한 모습’ 그대로를 순간적으로 나마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통 보고 듣는 것은 이전 행동 경험이 그러한 상황지각에 개입된 결과이지만 개인이 어떤 상황에 갑작스럽게 노출되면 본심 그대로 반응하게 된다. 이때야말로, “물은 물, 산은 산!”일 뿐이다. 


참선의 목적은 우리가 지금 본심으로 믿고 있는 마음이란 실은 ‘도적’과 같이 밖으로부터 침입한 것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격임을 가르치고 있는 경전을 단지 말이나 지식으로서 알려고 하는 수준에서 떠나 직접 꿀맛을 보는 것과 같이, 그 본의를 몸으로 체득하도록 하기 위한 것에 있다. 


인간의 마음이나 성격이란 이전 경험의 총화(總和)에 불과하다. 개인마다 경험한 것이 다르므로, 개인마다 다른 마음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동일한 것을 보고 들어도 개인마다 다르게 지각하고 해석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눈이 이미 그렇게 이전 경험으로 오염된 것이므로 어떤 새로운 것도 새로운 것으로 경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의 마음이란 오래된 가죽포대와 같은 것으로, 그 안에 새 술을 넣어도 즉시 상해 버리는 것과 같다. 


동화에 나오는 마이다스(Midas) 왕의 손에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게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이, 이전 경험으로 오염된 자신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래서는 내 몸이 성전이 될 수 없다. 선에서의 깨달음과 기독교에서의 ‘거듭 남’ 사이에 일련의 유사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을 무나 공으로 보는 것은 단지 불교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지구물리학자들의 눈으로 보아도 인간은 우주의 일부로 우주에 의하여 일거수 일투족이 통제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과학자들의 눈으로 보아도 공일 수밖에 없고,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이 대부분 학습된 것이라고 보는 심리학자들의 눈에도 인간의 본성을 백지로 보이게 된다.


또한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라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인간의 본질은 공이다. 공이란 말은 절대적 수용성을 의미한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법에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선에서는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한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너희의 몸이 곧 성전”이라 말씀하시기도 하고, 제자들을 자신의 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선언하신 것을 화두로 의심하고 또 의심할 필요가 있다. 


하루 무엇을 하든지 그러한 의심을 놓지 않고 밤낮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 보면 어떤 기연을 만나 문득 그 말씀을 단지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그 말씀이 자신의 육신이 되어 본심으로 나타나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화두란 말이나 문자로 전할 수 없는, 오직 몸으로만 체득하게 되는 소식을 전한다.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다. 

 

24. 깨달음의 결과


깨달음의 결과는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꿀 먹은 벙어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사실, “꿀 먹은 벙어리”란 말은 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는 비록 자신이 벙어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 아픔을 설명해 줄 수도 없고, 스파게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스파게티의 맛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어느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비록 자신이 체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자신이 배운 말이나 글로 나타내려고 하면 마치 자신이 벙어리가 된 것처럼 그것이 막혀버리거나 또는 자기가 체험한 것과는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의 생각이 개입되는 한 인간은 진리를 진리로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을 말이나 글로 나타내자면 그것은 오직 어떤 이론(理論)이나 설(說)이 될 뿐이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곧 자연이고 자연의 일부이며 또한 우주의 법칙에 의하여 시공간적으로 제한을 받게끔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미 도(道)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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