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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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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36)-“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7)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인간이 일부로 속한 우주는 하나의 만다라(Mandala)와 같은 것이고, 겹겹의 꽃잎들이 모인 꽃과 같은 것이고, 포도나무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잎들과 같은 것이다. 어떤 것도 어떤 것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없으며 비록 모습과 성질에 있어서는 서로 다를지라도 그 안에 동일한 피가 흐르고 동일한 살로 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을 공의 지혜 또는 인간 스스로 더럽히지만 않으면 누구에게서나 본심으로 나타나게 되는 일체지로, 그 안에 질서가 있고, 평화가 있고, 또한 우주를 창조해 가는 지혜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나라가 본래 그런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본래 모습이 그런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본래 모습에는, “너의 몸이 곧 성전”이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몸과 그 안에 하나님이 불어 넣어주신 숨이 있었을 뿐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본심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망심이 창조주의 영, 성령이 본래 자리잡고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19. 일체개고(一切蓋苦), 열반적정(涅槃寂靜)


어떤 사상이나 종교가 불교와 일치하는가, 어떤가를 재는 잣대로서 불교에는 사법인(四法印)이 있다. 사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蓋苦), 그리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제행무상이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제법무아란 ‘어떤 것도 자기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며, 일체개고란 ‘일체가 고통이라는 것‘이고, 열반적정이란 ’깨달음으로 번뇌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사법인을 전체로 보면 ’모든 것이 무상하므로 모든 것이 고통이며,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깨달음, 즉 견성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법인은 불교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법칙이며 원리가 되기도 한다. 자연현상이 모두 사법인에 병행한다. 


물리학이나 화학은 무상과 무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산다고 하는 그 자체가 반복되는 문제해결이란 점에서 고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란 곧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와 같은 연기(緣起) 또는 인과의 법칙을 발견하는데 있다. 


불교에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펴보아야 할 4가지 과제로 사성제(四聖諦)라는 것이 있다.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하는 것으로서, 첫째 자신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둘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넷째 최종적으로, 고통을 해결하는 구체적 방법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성제에 포함된 이 네 가지 위계적 단계는 의사가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검사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고, 마지막으로 병을 낫게 할 약이나 방법을 처방하게 되는 것과 같다. 


기독교 성서 역시 인간의 고통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창세기로부터 어떻게 인간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사법인과 사성제를 역시 그 안에 구체화하고 있다. 


첫째, ‘말씀’에 의하여 창조된 천지만물이 모두 무상과 무아를 뜻하는 것이고, 둘째, 인간에게 고통이 시작된 것은 어떤 것도 진실한 모습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어리석음, 망심에 의한 것이고, 셋째, 인간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곧 인간의 몸이 곧 창조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자신의 간교한 마음으로 ‘더럽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성전으로 비유한 것이나 자신을 포도나무, 성도를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 비유하는 것에는 인간의 본질이 무아 또는 공임을 지적하고 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는 자기라는 것이 없다. 포도나무 가지에는 자기라는 관념이 없으므로 포도나무와 한 몸이 되고,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로서 어떤 장애도 없는 포도나무 전체 그리고 더 나아가서 포도나무가 서 있는 우주와의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성령으로 하나가 됨’이라든가 ‘성령을 숨 쉰다’고 표현한다. 이를 우린 ‘영적 생활(spiritual life)'이라 말한다. 


인간은 우주에 속하여 있다.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우주의 물리적 화학적 법칙을 따르게 되어 있다. 인간의 오장육부가 우주의 법칙, 물리적 화학적 법칙에 일치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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