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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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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22)-“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우리는 “선악”이라는 자연 어디에도 없는, 분별심을 인간 나름으로 만들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창조주의 뜻과 법에 어긋나게 함으로써 자신을 병들어 죽게 한다. 


 우리는 공이라는 본질 또는 이법(理法)에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사물의 현상이나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우주의 법칙,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제한을 받거나 통제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오장육부가 모두 우주의 물리적 화학적 법칙에 따라 변하고 또한 적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인간의 마음 역시 그러한 법칙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되어있다. 


 하나님이 태초에 하늘과 땅, 밤과 낮, 육지와 바다, 남자와 여자라는, 상하좌우나 음양(陰陽)이라는 대법(對法)에 따라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고 또한 모든 것은 그 법과 질서에 따라 존재하고 있다. 그 법을 따른다는 것은 곧 지혜와 적응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법을 어긴다는 것은 곧 무지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빛의 지혜”라 말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성령은 아담의 본심이며 인간의 본심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의 몸을 만드시고 자신의 숨, 성령을 그 안에 불어넣어 생명을 얻게 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러므로, 아담의 본심이며 인간의 본심이고 인간을 살게 하는 근본지(根本智)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인간의 본심, 근본지가 인간의 망심에 의하여 가려지게 된 것이다. 


 먹구름과 같은 망심의 두께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망심의 두께가 너무나 두꺼워 어떤 빛도 들어 올 수 없게 된 사람은 그만큼 본심이 크게 방해를 받게 될 것이고, 구름이 본심을 가리고 있으되 얇으면 본심은 쉽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성령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온 천지에 가득 차 있으나 그 지혜를 실현하는데 있어서의 한계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성령은 받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누구나 이미 받은 것이다. 성령은 시공간적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빛이나 공기처럼 온 천지에 차 있다. 모든 사람이 성령을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으나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망심만 내려놓으면 사람은 누구나 성령으로 생기를 얻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성령으로 생명을 얻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공의 본질로서의 이(理)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답다. 망심이란 파도만 잔잔하게 되면 명경지수와 같은 호수위에 햇빛은 찬란하게 비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와-”하는 깨달음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나,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서의 나, 즉 나의 본질이 공무아인 동시에 이(理)임을 성서는 이심전심으로 전하고 있다. 


 11. 본래불(本來佛) 


 선에서는 누구나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옥에 갇혀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다는 것이다. 불성이란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 또는 진리를 깨달은 부처로서의 본성을 말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 역시 그렇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숨으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보시기에 만족스런 것이었다. 


 선에서 말하는 불성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 또는 아담의 본성은 미리 선이나 악으로 고정(固定)된 것이 아님으로 어떤 인연(因緣)을 만나는가에 따라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 가변성(可變性)이 특징이다. 인간의 본성 또는 본질로서 이러한 가변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인간은 무상이 변하여 가는 자연환경에 적응해 갈 수 없으리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담과 이브 역시 배가 고프면 나무 열매를 따먹어야 했고, 피곤하면 잠을 잤어야 했다. 그리고 만일 아담의 마음이 선이라든가 악으로 고정되었던 것이라면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경고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선이라든가 악이라는 관념이 어린아이처럼 아담과 이브에게는 본래 없었으므로 그들은 낙원에서 어떤 걸림도 없이 자유스러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교한 뱀을 만나고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일련의 인연으로 그들의 본심은 선과 악이라는 관념 또는 지식으로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마음이 이전 경험으로 고정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은 곧 쉬지 않고 변하여 가는 환경조건에 적응해 갈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백천가지 번뇌 망상으로 밥을 온전히 먹지 못하게 되었고, 잠을 자면서도 백천가지 걱정근심으로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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