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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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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성서(聖書)를 읽다(15)-“우리가 지금 에덴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불교의 경전에는 아래와 같은 게송이 있다: 

 

 

가문에 의하여 천민이 되는 것이 아니요.
가문에 따라 바라문이 되는 것 아니네.
행위에 의해 천민이 되고
행위에 의하여 바라문이 된다. 

 

사람에게 붙어진 이름이나 성은 
이 세간의 통명(通名)이 될 뿐 
그것은 세속에서 전해져 온 것
사람이 태어난 그 때 붙여진다.

 

가문에 의하여 바라문이 되지 않고 
가문에 의해 바라문 아닌 것 아니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되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아닐 수 있다.

 

행위에 의해 도적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된다.
행위에 의해 사제가 되기도 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7. “더럽히지만 말라!”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내리신 명령은 오직 한 가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 명령은 선악이라는 분별심으로 자신을 스스로 방해하거나 “더럽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미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숨을 쉬게 된 것이므로 그 보다 더 완전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선악과를 맛본 즉시 선악이라는 관념에 집착되어 있다. 본래의 깨끗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인간의 몸에 붙어 있는 눈과 귀, 모든 감각기관들이 선악이나 귀천이나 미추로 오염되어 어떤 것에라도 선악이라는 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지금 필자 자신이 현재 우리가 본심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본심이 아니라, 실은 망심에 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망심을 바탕으로 본심에 관하여 말하기 때문에, 망심을 떠나야 볼 수 있는 본심을 자신이 볼 수도 없고, 남에게 보게 할 수도 없다.


 이 말은,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거듭거듭 말씀할지라도 우리가 그 말씀을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에서는, 그것이 관념일 뿐, 우리가 직접 예수님의 몸에 붙은 가지로 기능할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한다. 달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배운 말과 문자를 떠나서는 무엇인가 생각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우리의 생각이란 곧 우리의 말이 내면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마치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무엇이나 황금으로 변하게 되어 있는 마이다스(Midas)의 손처럼, 우리의 생각이 닿는 즉시 무엇이나 선악으로 분별하게 하고 또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이 말은, 우리는 이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밝아진 그 눈, 곧 망심으로 자신과 대상을 보게끔 길들여졌기 때문에 성서를 읽고 설교를 듣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망심으로 오염된 눈으로 성서를 읽는 것이다. 역시 망심으로 오염된 귀로 설교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으로서는 자신이 성서의 본의가 무엇인가를 바로 이해하였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성서의 본의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은 “더럽히지만 말라!”고 한 것인데 우리의 마음은 이미 더럽혀져서 어떤 것도 진실함 모습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진실한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이 곧 성전이며,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인데 그것을 보지도 못하게 되어있고, 더군다나 성전으로 기능할 수도 없고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 자신을 실현할 수도 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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