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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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60)
jsshon

 

 

(지난 호에 이어)
차로 목을 축이고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보았겠지요. 정신을 좀먹는 근대문명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또 그것은 인간의 건강자체도 해칩니다. 인종차별이 있고, 반전데모가 있고, 히피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국을 거부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데 고마운 생각이 들 리가 없지요.” 


“나는 미국 밖의 다른 나라에 나가보지 못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당신들의 눈엔 어떻게 비치리라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너무 복에 겨워서 날뛰는 헛 투정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사람들만이 사는 곳이 이처럼 기름지다면 정말 지나치게 축복해 주었다는 탄식이 나올 것입니다.


이 지구상엔 얼마나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까? 작은 땅덩이를 금 쪽 같이 여기고 빈약한 자원을 더 할 수 없이 감사하게 생각하며 사는 백성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가벼운 기분으로 던진 질문이 묵직하게 자신의 정수리에 떨어진 듯 심각해졌다. 어쩌면 그건 오래 동안 생각해 오던 마음의 응어리였는지도 몰랐다. 정중하게 사과라도 하듯 여기까지 이야기 하던 ‘프레드’는 ‘숙’을 한번 건너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미국의 젊은이들은 중대한 과오를 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기정사실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런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 싶은 돌파구를 파괴에서 찾으려 합니다. 다 때려 부수고 새로운 것,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 그것은 확실히 잠재적인 신념이지만 그런 것들에 등대고 폭력을 꾀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파괴는 그들의 신념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때려 부수면 그대로 멸망하지 다시 세울 여력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파괴력은 다시 세울 여지를 남기지 않는 완전 파괴이고 그만큼 지구의 멸망은 무섭습니다. 멸망이 오기 전, 때려 부수기 전에 무엇보다 이들은 신의 축복을 고마워 할 줄 아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멸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구하는 단 한 가지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프레드’의 속생각을 듣고 나니 약간 계면쩍어졌다. 좁고 빈약한 조국에 비해서 한 없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광활한 대지. 여기 사는 미국인들이 이 모든 혜택을 귀히 여기지 않는 모습들이 울분을 일으켰는지도 몰랐다. 


비경작료까지 주어가며 버려 둔 농토, 지나치게 내버리는 소비성향을 볼 때마다 신은 참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생기곤 했었다. 그렇다고 가진 자의 변명이 덜 가진 자에게 무슨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되겠는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엔 목사님 같은 생각을 하는 미국인이 또 몇 사람이라도 있기에 미국은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섭니다. 오직 다섯 사람의 의인이 있었다면 소돔 성을 구할 수 있었듯이 목사님 같은 분들의 할 일도 무척 어렵고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생각은 모두 옳습니다만, 전 아직도 신(神)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빠가 이의를 달아 보았다. 


“아. 아니요. 신은 만민에게 공평합니다. 신이 불공평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축복을 찾지 못한 이유로 해서 빈곤한 것뿐이지요.”


“이젠 그만 주무시지요. 너무 늦어서…” 


쪼그리고 앉아 어른들 이야기를 듣던 ‘페이스’도 어느새 빠져나가고 벽난로의 불꽃도 사그라졌다. 토론의 열기가 가시자 체온도 내리는지 온 몸이 살살 떨려왔다. 


벽장에서 담요를 있는 대로 다 꺼내 세장은 덮고 두 장은 바닥에 깔았다. 이불 속이 차츰 따뜻해지자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잠에 빠져 들었다. 

 

‘투굿투큇’의 시간들 


‘릴리안’의 옅은 기침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커피내리는 주전자 소리도 들리고 은은한 커피향이 집안 가득 감돌았다. 


신호라도 된 듯 수런거리는 활기가 솟아났다. 아침10시였다. 모두들 늦잠을 잔 것이다. 


활짝 갠 날씨였다. 새 아침에 맞이하는 호숫가는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원색의 제전이었다. 이슬비를 촉촉하게 맞은 잔디가 햇빛에 반짝반짝 선명하게 빛났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잔잔한 호반에서 싸늘하고 맑은 공기가 몰려들었다. 


“이건 브런치(아침 점심겸한 식사)입니다.” ‘프레드’가 껄 껄 웃었다. 시간에 매이지 않고 마음껏 늦장을 부릴 수 있는 휴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아침이면 숲에서 새들이 날아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여러 새들이 제각기의 소리로 울어댔다. 그 소리들은 한 결 같이 뽀르르~ 구르는 맑은 소리였다. 잔잔한 호반에 미끄럼이라도 지치듯 청명한 공간을 긴 여운으로 채우며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시선을 끄는 새가 있었다. 골드핀치라는 이름을 가졌다. 


크기는 꼭 작은 참새만한데 배 밑은 하얗고, 양 옆구리와 날갯죽지는 짙은 쪽빛으로 반드르르 윤이 나는데 머리와 등은 아주 선명한 황금색, 입부리는 빨갛게 생겼다. 


봉제장난감 같은 이 새들은 꼭 대 여섯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다녀서 멀리서 보면 갑자기 그 자리에 작은 꽃밭이 생긴 듯 착각이 들었다. 짓 푸른 호수와 수풀을 배경으로 작은 화단이 움직이는 듯, 때로는 공중에서 여러 개의 꽃 뭉치가 어우러져 춤추듯 현란하였다. 


‘영’은 새 모이를 땅에 흩트려 놓고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새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보는 것이 큰 재미였다. 


“아 이. 아 하하.” ‘영’의 손바닥에서 모이를 쪼고 있던 새들이 후루룩~ 날아올랐다. 


‘윌스보로’는 이곳에 정착한 아이리쉬(IRISH)후손으로 뉴욕의 거부상인 윌리암(WILLIAM GRILLAND 1765년)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이라는데 그가 살던 통나무집은 현재 특수식물을 기르는 식물원 온실로 공개하고 있었다. 1800년대에는 석회석 채석장으로 300여명의 일꾼을 고용했던 유명한 건축자재상은 영국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역사가 있었다. 


아빠와 ‘페이스’는 밤에 손전등을 비쳐가며 잡은 지렁이로 도크에서 밤낚시를 하였다. ‘영’이 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저 혼자 술술 읽고 있었다. 글자는 잘 모르지만 그림과 이야기를 다 외워버린 것이었다. 


“Henry has a small Tiger cat / Play with a ball / Sleep in a hat/…” 모두들 놀랐다. 

 

모터보트를 타고.


‘프레드’가 스토레지에서 구명조끼를 들고 나왔다. 보트에 엔진을 달고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하였다. 좀 망설였지만 먼저 타본 아빠가 괜찮다고 하였다. ‘영’은 벌써 앞서 깡충거리고 도크로 가고 있었다. 잔잔한 호반을 보트를 타고 달린다는 흥분이 슬그머니 호기심을 충동이질을 쳐댔다. 


조끼를 입고 ‘영’과 둘이 가운데 앉고 ‘프레드’가 뱃머리에서 방향을 조정하였다. 보트가 부르릉~ 미끄러져 나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하고 물굽이 따라 숲속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차분한 즐거움이 일었다. 


얼마를 갔을까. ‘릴리안’이 손사래를 치며 돌아오라고 불렀다. “멀리 가지 말고 어서 돌아와요.” 


“조끼를 입어서 괜찮아요.” 


‘프레드’의 대꾸에 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보트를 돌려서 도크 가까이 오니 그제서야 ‘릴리안’이 안심을 하는 것이었다. 


“구명조끼를 다 착용했는데 왜 그렇게 공포에 질려 고함을 질렀어요.” 


“당신은 비상구조방식을 잘 알지만 ‘수지’와 ‘톰’은 전혀 모르잖아요.”


그때 뇌리를 치듯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안내자와 구명조끼, 설비가 아무리 잘 갖추어 졌더라도 내 생명은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떠나기 전날은 한국음식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간 이웃에서 파이니 빵 같은 걸 구워오고 저녁초대도 몇 번 받았기에 모두를 부르기로 하였다. 낮에 ‘윌스보 로’에 나가니 유명한 관광지 탓인지 쌀도 있고 당면도 있었다. 불고기와 잡채, 오이채를 만들었다. 


 “ ‘릴리안’ 한국음식이 왜 이처럼 맛있는지 알아냈어요.” 음미하듯 잡채를 입안에서 씹고 있던 ’프레드‘가 불쑥 말했다. 


“잘게 썰기 때문이오. 아주 정교하게 잘게 썰어 만든 음식이라 겉보기에도 예술적이지요. 당신도 이렇게 잘게 썰구려.” 모두들 웃었다. 그럴듯한 조크였지만 내심 좀 불편하였다.


한국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시간들의 반 이상이 써는데 드는 것 같다. 얇게 저미고, 다지고, 채 썰고. 고기를 덩어리 채 로스트하거나 생선을 모양대로 구워서 소금 후추 가루를 쳐서 먹는 이들의 식생활과 비교하면 시간 면에서 얼마나 비경제적인지 모르겠다. 치하보다는 시정해야 할 사항으로 지적 받은 듯 무안하기도 하였다. 

 

별장 ‘투굿투큇’에서 얻은 것


신선한 자연과 어울려서 지낸 며칠간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진 듯하였다. 머리 아픈 문명을 비켜놓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넉넉하게 몸의 리듬을 맞추어 가며 지낸 생활은 일주일로서 나의 정신세계를 정비하는데 충분했다. 좀더 가벼워진 심신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에게 닥친 삶을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골드핀치들이 여전히 꽃밭을 지고 몰려왔다. 보트는 끌어 올려서 덮개를 씌우고 고기바구니와 자잘한 기구들은 모두 스토레지에 집어넣었다. 도크까지 걸어 나가서 호수를 찬찬히 드려다 보았다. 가슴가득 담아가기라도 할 듯 큰 호흡을 몇 번 하였다.


돌아서서 집 쪽을 올려다보았다. 집에서 나오기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며 본 일이 없는 베란다 지붕추녀에 현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물에서 떠내려 온 하얀 널 판지에 글자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TUGUDTUQUIT’ 이라 쓰여 있었다. 인디언의 이름인가? ‘릴리안’에게 물으니 깔깔거리고 웃는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의 작품이었다. 
TOO GOOD TO QUIT (그만 두긴 너무나 좋다), 삶이란 포기하기엔 너무 좋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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