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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on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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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46)
jsshon

 

(지난 호에 이어)


 어머님께도 편지를 썼다. 


“어머니,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입원해 계시다니 더 이상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상처가 아물고 기동만 하실 수 있게 되면 병은 저절로 완쾌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편찮으실 땐 많이 잡수셔야 합니다. 그래야 새 힘이 솟고 병도 빨리 나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미안해하지 마시고 말씀해 주세요. 어머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만들어 주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이 편지에 쓰는 내용이 사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한선고를 받은 중한 병이 아니라 가벼운 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라면 얼마나 기쁠까. 환상처럼 쫓다가 끝내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거짓을 쓰고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면 펜은 그 자리에 멈추고 끊일새 없이 눈물이 주르륵 양 볼로 흘러내렸다. 


“넌 갓나서부터 어찌나 자주 앓는지 내가 퍽 애를 먹었다. 백일도 안돼서 폐렴을 앓느라고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아파서 보채는 애를 밤낮으로 안고 앉아서 새우니까 나중에는 눈이 다 짓무르고 팔 다리를 펼 수가 없게 되더구나.“


아무리 정성을 드려도 창백하리만치 희고, 키만 머쓱한 ‘숙’을 보며 가끔 짜증 섞인 푸념을 하셨다. 그 일이 아니더라도 더 잘 기억나는 일이 있다. ‘갑상선팽창’이라는 묘한 병을 얻어 수술을 받고 입원하였을 때였다. 목에다 붕대를 감고 움직이지도 못할뿐더러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처가 울려서 아프기도 하지만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걸쭉한 가래가 쉴새 없이 목에 엉겨서 자칫하면 그대로 숨이 막힐 듯 답답하였다. 둥글게 말은 휴지 한 통을 하루에 다 쓰도록 연신 휴지에 받아내시곤 하였다. 조금만 휴지를 늦게 대면 숨이 막힐 것 같고 마음대로 할 수는 없고 짜증내다 화를 내다 끝내 눈물을 흘리기 일수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목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곤 물 밖에 없으니 과일주스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일일이 작은 차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넣어주면 입술을 추기 듯 받아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자칫 양이 조금만 많이 들어가면 꿀컥 삼키느라 상처가 울려서 화를 내고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죄라도 지은 듯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어쩌다 네가 그런 몹쓸 병이 걸려가지곤...” 하시며 애꿎은 콧물만 훌쩍이셨다.


병이 다 낫고 멀쩡하게 돌아다녀도 늘 아픈 사람 같게만 여겨진다고 하셨다. 김장철에 배추 한 포기만 거들려 해도 기겁을 하셨다. 그런 거 그만두고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주문이었다. 


미국 가서 혼자 손으로 애들 키우고 어찌 사느냐고 편지마다 빠지지 않는 어머님의 걱정이었다. 그런 때의 어머님은 언제나 건강하고 만능의 힘처럼 든든하게 여겨졌는데 실상은 더 몹쓸 병에 시달리고 계신 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날 어머님께 드린 모든 괴로움들이 속속들이 후회의 화살이 되어 심장에 박히는 아픔이 왔다. 어머님은 그렇게 자식을 기르셨는데… 나는 지금 어머님을 위해 이토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너무도 무력한 자신이 다시금 슬퍼지는 것이었다.


그 후로부터 오는 고향소식은 신경을 바작바작 긁어대는 답답한 사연뿐이었다. 시한선고를 받은 어머님을 옆에 모신 가족들의 심경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우울한 나날은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몰아넣고 불행의 굴레를 씌워 점점 숨가쁘게 그 끝을 조이며 흘러가고 있었다. 


‘당할 때 당하더라도 모든 것을 낙천적으로 가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거야…’ 꼬박 꼬박 어머님께 명랑한 편지를 드렸다. 


 아이들, 아빠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 유쾌한 일들을 골라서 써 보냈다. 편지를 쓰는 동안은 언제나 어머니는 떠나올 때 공항에서 뵌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계신 착각이 들게 되고,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 


때때로 나를 위해서 쓰는 이 편지의 환상은 동생들이나 친구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기도 하였다. 


“‘숙’이야. 혹시 이다음에 네가 평생의 한(恨)이 될까 봐 얘기하니 그렇게 이해해 주어. 어떻게 너만이라도 다녀갈 수 없겠니? 어제 토요일. 우리 그룹친구들이 병원에 문병 갔었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 계시던 어머님이 그냥 막 우시지 않겠니. 우리도 모두 눈물이 나서 참을 수 없더구나. 네 생각이 더욱 간절하신 때문이었을 거야. 너를 본 듯 반갑다고 하시더니 언제 너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또 우시더구나.”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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