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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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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단 냄새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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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한테서는 늘 은단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항상 은단을 드신 것은 독한 담배 냄새를 희석시키려고 그러셨으리라.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유난히 양 귀밑에서부터 턱까지 수염이 많았다. 그 수염을 구레나룻이라고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를 예쁘다고 내 볼에 아버지의 얼굴을 비벼댈 때면 수염을 깎았어도, 어찌나 따가웠는지 아팠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수염을 못 깎으신 날은 아픈 사람 같아서 어린 시절이었을 때에도 마음이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수염을 말끔히 깎으신 후, 출근길의 아버지는 짙은 곤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신걸 보면 '오늘도 활기찬 새날이 시작 되는구나!' 하는 가슴 뿌듯한 희망과 안정된 분위기의 우리 집이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가정의 중심인 아버지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모기나 벌레에 물려서 가려워 긁으면, 아버지는 늘 아버지의 침을 발라 주셨다. 침 속에는 가려움을 진정시켜주는 성분이 들어 있으니까 곧 좋아질 테니, 긁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이 그런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꽃 키우기를 좋아하셨다. 항상 난초 화분들을 손질하시고, 나이 드신 후에는 각종 난을 좋아하셔서, 난이 커가는 모습 속에 우리 사 남매를 생각하시며 위로를 받으신 것 같다. 


 아버지는 우리 사 남매의 호를 지어 주셨는데, 사군자의 매, 란, 국, 죽, 첫 자를 따서, 나의 호는 스스로 절제하며 강한 생명력을 지닌 외유내강의 전형이라 볼 수 있는 은은한 난초, 난(=란)의 향처럼 살라고 난은(蘭隱)이라고 지어주셨고, 오빠는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눈 속에 피는 매화처럼 강하게 살라고 매은(梅隱)이라 하셨고, 바로 밑의 남동생은 찬 서리에 피는 국화처럼 오상고절 하라고 국은(菊隱)이라 하셨고, 막내 남동생은 대나무처럼 비바람 폭풍에도 꺾이지 말라고 죽은(竹隱)이라 하시며 사 남매가 군자답게 살라고 하셨다. 


 또한 평생 붓글씨 쓰시는 것을 낙으로 삼으시어, 옆에서 먹을 갈아드리는 엄마와 함께 묵향에 사시었고, 붓글씨도 대전에서는 내노라 할만큼 달필이셔서 한문의 해서체로, 또는 행서체로, 초서체로 병풍 뒤에 붙이는 글로 수백 편을 쓰셨다. 아버지를 보듯 현재 가지고 있는 병풍 뒤에 붙일 글씨만 해도 열 편이 넘는다. 


 아버지 집의 벽에 걸린 족자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한문 붓글씨 행서로 쓰여 있는데, 해석하면 이렇다. 


 ‘부모가 책을 많이 보고 그 책들을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자식은 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 자식에게 물려주면 자식은 그 돈을 지키지 못한다. 자식은 아주 어릴 적부터 교육 시키는 길 밖에는 없다.’ 라는 내용이다. 


 고기를 많이 잡아 주어도 그것은 얼마 못 간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교훈과 같은 위의 글을 아버지는 자식 교육의 좌우명으로 삼으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시면 “자, 아침 뉴-스 좀 들어보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 하시며 늘 라디오를 켜시곤 했다. 


TV가 나오고 나선 뉴스시간이 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먼저 뉴스를 보셨다.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뉴-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사셨다. 


 또한 아버지는 자수성가 하신 분의 모범케이스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고, 항상 육사생도처럼 자세를 바르게 하셨다. 걸음걸이도 반듯 하셨고, 식사하실 때도 반듯하게 앉으셔서 하시고, 주무실 때도 주로 반듯하게 누워서 주무셨다. 


 아버지는 노력 형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이 아니라, 그 빈도에 의해서다.” 라는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사셨다. 젊었을 때 밤잠 안자고 공부하여 행정고시에 합격 사무관이 되셨고, 일생을 늘 공부하는데 시간을 쓰셨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버지를 조금은 닮은 것 같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 배우고 익히면 때때로 그 아니 즐거운가? 아버지는 이 말을 좋아하셨고, 배우는 과정을 즐기셨으며 행복해 하셨다.


 그런 것을 보고 자라면서 아버지의 교훈들이 나의 글쓰기를 통해 늘 일깨우게 되니 글쓰기가 결국 오늘의 나를 성장시켰다고 자부한다. 늘 망설이고 나약했던 나였지만, 나의 세 아이들에게는 사회적 관계나 정신적 결핍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을 채우고 바로 세우며 강하게 만드는 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늘 꿈이 무엇이냐? 무엇이 되고 싶으냐? 고 물으셨을 때 나는 주저하고 망설이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잘 몰랐다. 그냥 아픈 사람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고, 배고픈 사람 밥 좀 주고 싶다, 라는 초라하고 부끄러운 답변을 했었다. 그럴 때 아버지는 “그 정신을 네 가슴에 새겨라” 하셨고 “새겨라, 새겨라” 는 그 말씀을 저승에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시며 지금도 하고 계신 듯하다. 


 “성자야, 자존심 꼿꼿하게 세우며 굳세고 올바르고 당당하게 살아라, 자존심이 네 목숨이다.”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단호한 음성이 늘 귓전에 걸려있다. 아버지는 혹독하게 가난한 한국의 그 시절을 어떻게 사셨는가.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분이셨다. 박봉의 국가 공무원 생활에도 저축을 하셨고, 꽁보리밥에 소금물을 찍어 먹으면서 문전옥답을 사들이셨다. 


 귀감, 구로, 무릇, 결자해지, 자업자득, 사필귀정, 근묵자흑, 귀소본능, 회자정리, 흠향, 근검절약, 불가근불가원이라, 생자필사 유형자필멸이라,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 등 이런 말들을 즐기고 귀히 쓰셨다. 


사람은 이름 석자 얼굴 한 뼘으로 산다. 분수에 맞게 살아라. 만원이 있으면 천원만 있는 것처럼 써라. 사람은 입이 무거워야 하느니라. 


아버지를 보며 강인함과 단호함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말들이다.


 한국에 갔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는데 “어려운 남을 위해 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다시 태어난다면 남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 외국 땅에 나와 살고, 나이 들면서 더욱더 고국을 생각하게 되며, 고향을 더 그리워하게 됨은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그곳에 사셨고 그 곳에 묻히셨기 때문일 게다.


 단풍바람이 산산이 불어오는 오늘따라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향기로운 은단 냄새가 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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