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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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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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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나의 친정 부모님은 이불 하나, 요 하나를 펴놓고, 두 분이 한 이불 속에서 주무시는 걸 평생 보아왔다. 혹 감기가 들어서 옮길까 봐 방을 옮겨 주무신다든지, 한 분이 편찮다든지 싸웠다든지 불가피한 어떤 이유로 각 방을 쓰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어도, 평생 그렇게 사셨다.


 2년 전에 92 세로 돌아가신 엄마가 전에 “각 방 쓰면 부부 간에 정이 멀어져서 절대로 안 되는데”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처녀시절, 집에서 엄마가 안 보여서 아버지 방 앞에 가서, 엄마! 하고 부르면서 방문을 열면 아버지가 이불 속에서 젊잖은 음성으로 “왜 그러니?” “엄마 어디 가셨어요?” 하면 “엄마는 왜?” 하며 보이지 않던 엄마가 이불 속에서 고개만 쏘옥 내민다.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가 엄마를 자기 품에 품고 잤다는 것이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나는 왜 그리 눈치가 없었을까? 그것도 환갑이 가까워서야 깨닫다니 나도 참 둔한 여자다. 


아버지가 79세에 돌아가시니 누가 나를 품어 주겠냐며 그토록 서럽게 울던 엄마, 엄마는 저 세상에서도 아버지를 꼭 다시 만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두 분 다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그곳에서도 두 분 분명히 만나 엄마는 아버지 품에서 주무시겠지, 엄마는 머리통도 커서 무거울 텐데 우리 아버지 팔뚝은 어떻게 되나? 나는 늘 아버지 팔뚝이 걱정되었다. 얼마나 팔뚝이 저리셨을까, 기우일까? 아버지의 팔뚝이 저리다든지 아프시다는 말을 평생 들은 적은 없다. 


 전에 누가 이혼을 한다 하니 아버지는 “이혼이라니 제 품에 들어온 여자를 왜 뺏기고 사느냐, 내 여자는 내가 지켜야지” 이런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숨 끊어지는 순간까지 마누라를 자기 품속에 꼭 틀켜쥐고, 경제권도 틀켜쥐고 있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곳에 유언장이 있다고, 그대로 하라고 하시며 숨을 거두셨단다. 나는 캐나다에 있어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주변에서 각방 각방 하는데, 삶이 경제적으로 넉넉해져서 일까? 우리 엄마 아버지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각방 쓰는 것이 유행인가? 그 말이 진실인가? 각방 쓰는 것이 미덕인가? 각방 쓴다고 말해야 우아하고 고상한가? 우리 한민족은 각방 쓰는 민족인가? 그러면 결혼은 왜 했나? 종족 번식을 위해서?


 결혼해 사는 조카 녀석한테 물어 보았다. “너희들은 한 침대에서 자니? 각방에서 자니?”


“각방 쓸 방도 없어요. 애기가 방 하나 차지하고 따로 잘 방이 어디 있어요?”


그런 건 쓸데없이 왜 묻느냐는 듯 전화 빨리 끊으라는 것이다. 아 하, 방이 하나여야 되는 구만. 


 남편의 친구 현직 판사 인도사람이 있는데 어제 그 집에 초대되어 갔다. 그 친구는 캐나다에 와서 사는 것이 젊었을 때 가졌던 꿈보다 훨씬 잘 살고 있어서 늘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자체가 불행이라며, 각방이 웬 말이냐고 한다. 


침대에서 뛰쳐나가면 부부간은 끝장이라고 인도사람 특유의 눈을 부릅뜨며 열변을 토한다. 인도 계통의 사람이라면 한국인들과는 문화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상당한 이질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심리란 대동소이 어느 나라 사람일지라도 거기서 거기다. 얼마 전에 보지 못했던 짧은 구레나룻에 힙스터식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그는 입꼬리 양쪽 위의 수염 끝을 수시로 양손 엄지와 검지로 말아 올리며 길들이는 모습이 여성들이 앞머리에 신경 쓰는 것보다 더했다. 부부간이란 이불 속에서 시작된 역사가 아니냐고 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아끼는 후배 하나가 평소에도 내 말을 잘 들었다. 60세 전에 아들 딸 다 결혼시켜 내보내면 인생 반은 성공이라고 수십 번 말했더니. 그렇게 했다. 얼마나 예쁜지? 


“그래 홀가분하지?” 


“너무 좋아요, 선배님 덕분에” 


“요즈음은 어찌 지내나?” 


“신혼부부처럼 살아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맨날 싸우고 이혼 직전까지 갔던 그 부부가 지금은 애들 결혼시켜 다 내보내고 신혼부부처럼 살고 있단다. 


“나와라, 맛있는 것 사줄게” 예뻐서 업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100세를 사는 세상이니 노후대책으로 써도 써도 안 줄어지는 돈 준비 단단히 해놔, 캐나다 정부에서 주는 월페어 탈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건강 챙겨, 친구나 취미는 그 다음이야” 


“알았어요”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니 남이라도 나의 일보다 더 기쁘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충고를 잘 듣는다. 


 내 속에서 들리는 메시지가 있다. 어차피 헤어지지 못하고 산다면 전생에 당신한테 빚을 많이 졌나 보다, 하고 순간순간을 넘어가 주는 너그러운 마음이었으면 좋지 않겠나. 경험으로 깨닫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각자 형편과 이유가 있겠고, 각방이면 어떠랴. 후회하는 인생이면 어떻고, 후회 안 하는 인생이면 어떠랴, 다 자기가 선택한대로 그렇게 살다가는 거지. 어쩌면 그게 인생의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자 분은 해해거리면서 “우리는 헤어지지 못해서 살아요” 한다.


그게 자랑이다. 말이라도 왜 그렇게 할까?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듣는 다면 참 좋기도 하시겠다. 바꿔 놓고 생각해 봐, 네 딸이 그렇게 말한다면, 네 아들이 그렇게 산다면, 네 맘이 웃을 일이겠나? 왜 한치 앞을 못 보나.


 한번 가는 인생 인데. 언제고 피고 싶지 않은 꽃이 있던가. 언제고 지고 싶은 꽃이 있다던가. 늘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살다가 가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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