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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j
(국제펜클럽회원,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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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탯국과 색소폰
hongsj

 
 
 그 날은 모처럼 * * 한인양로원 봉사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토론토 * * 교회의 봉사자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 * 한인양로원에 가서 노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우리 에버그린 색소폰 동호회원들도 * * 교회 봉사자들과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나도 평소에 * * 한인 양로원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는데, 기회다 싶어 이것저것 뒤로 미루고 무조건 회원들을 따라 나섰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경이었다. 

 

 


 교회에서 온 남자 분들은 양로원 밖에서 LA 갈비 바비큐 준비에 분주했고, 여성분들은 행복한 얼굴로 장만해온 음식들을 차려내기에 손놀림이 바빴다. 그 양로원에는 열여섯 분의 노인이 계시는데 할아버지 세분은 모두 90세가 넘으셨고, 할머니 열 세분의 평균연령은 87세라 한다.


 이 아버님은 치과 의사이셨고, 이 어머님은 일본어 선생님이셨고 등등 전성기가 지난 이 부모님들을 바라보면서 고국에 계신 내 어머니 모습이 점점 눈에 밟혀왔다.


 교회에서 온 봉사자들이 각 방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조심스럽게 모시고 와서, 아주 천천히 응접실 의자에 차례대로 앉혀드리는 모습은 참으로 정성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각 봉사자들은 노인 한 분씩 맡아 손을 마주잡고 “할머니 캐나다에 오신지는 몇 년이나 되셨어요? 고향은 어디세요? 할머니 무얼 잡숫고 싶으세요? 누가 제일보고 싶으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등등 정답게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갔다.


 나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감동어린 장면들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노인들을 잘 대하는지 의아해 했지만, 교회에서 훈련된 봉사생활에 익숙한 그들인지라 더욱 정감어려 보이기만 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꽃이 무르익은 다음에 봉사자들은 열손가락 끝만으로 노인들의 머리를 살살 만지듯이 살짝 살짝 자극을 주었다. 저렇게 해드리면 기분이 어떨까? 나도 열손가락 끝으로 내 머리를 두드려 보았다. 내 머리니까 조금은 세게 했다. 머리 밑이 지압과 마사지를 받은 듯 시원함을 느꼈다. ‘아, 그래서 노인들한테 저렇게 해 드리는 구나’ 이해가 되었다. 


 어느 틈엔가 한국에 계신 내 엄마가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생각에 문득문득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어떤 할머니는 “아이구 시원해, 고마워, 나도 한 때는 댁같이 고운 때가 있었다우. 지금도 마음만은 청춘이라우” 하시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할아버지도 질수 없다는 듯이 “나도 밥 한 사발씩 먹고 치맛자락만 보아도 힘 좋던 때가 있었어”하며 응수하니 모두 폭소가 터졌다.


 즐거운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잘 익힌 LA 갈비와 심심하게 담은 김치, 묵무침과 생선부침, 가늘게 썬 야채들, 부드러운 떡 종류와 잘 익은 수박 등 모두 풍성해 보였다. 특히 노인들이 좋아하실 두부와 무를 썰어 넣은 동탯국의 맛은 천하 일미였다. 노인들이 예전에 먹던 맛이라며 퍽이나 좋아하셨다.


 동태는 생선이라서 비릿내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비릿 내는커녕 시원한 맛에 구수하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어머니도 이런 동탯국을 좋아했는데 먹다 보니 나도 몰래 목이 메었다.


 식사가 끝나자 다시 봉사자들이 노인 한 분씩 맡아서 어깨를 살살 주물러 드리고, 또 그 노인들의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모습이 한 폭의 명화처럼 내 눈에 각인이 되었다. 


 2부 순서는 색소폰 연주가 곁들인 여흥시간이었다. 색소폰을 연주하니 노인 분들은 신기하고도 즐거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리운 금강산’이 연주될 때 고향이 이북이라고 했던 할머니는 계속 눈물을 닦아 내렸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타향살이’, ‘고향의 봄’ 등을 연주하니 노인 분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지만, 손뼉을 살살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셨다. 그 모습을 보는 내 가슴은 왜 그리 아려오고 목이 메던지, 나의 어머니도 이런 흘러간 노래들을 좋아하셨는데… 


 나는 색소폰을 배운지 얼마 안 되어 떨리는 가슴으로 “대전 부르스”를 천천히 연주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교회에서 온 봉사자들이나 노인 분들이 나이든 여자가 색소폰을 부는 것이 신기하다며 색소폰연주에 따라 노래 부르며 모두들 좋아했다. 


 마음 한편 아득히 먼 곳에서 ‘두마안 가앙 푸으른 물에 노젓는 배애앳 사아아공…’ 한국에 계신 내 어머니의 가녀린 음성이 귓전에 울려왔다.


 지난 1월 대전 노인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엄마를 한국에 가서 뵈었다. 그 때 엄마가 “성경에 장수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없이 누워서만 오래 사는 것은 복이 아닌 것 같다”며 힘없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태어나 한 세상을 살고 가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장수하시는 모습이 기쁘지만은 않고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이 모습이 얼마 후 나의 자화상이지 하는 삶의 무상함이 떠올랐다. 엄마를 병원에 두고 캐나다로 떠나오는 불효여식의 마음인들 갈가리 찢어지지 않았겠나. 부모님의 최후를 함께 하는 자식이 자식이지 하는 바람은 마음뿐이었다. 


 양로원 밖으로 나오면서 앞뜰에 심어놓은 맨드라미와 꽈리나무를 보니 한국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하는 노인들을 위로해줄 수 없는 내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남쪽으로 돌아오는 토론토의 하이웨이 404에는 내 마음 같이 보슬비만 서글프게 내리고 있었다.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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