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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sul
설동란
(피커링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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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은퇴 후의 생활
drsul

 

평소에 자주 보는 TV 공감토크쇼에서 한 시간 이상 여러 사람의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이 1주일에 6일 동안 열심히 근무하는 중이고, 형편과 처지가 고국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고향의 Y선생님 별명이 '싸가지 없는 놈'. 말을 시원하게 해서 지나칠 정도다. 


W씨 부부의 고충도 이해한다. 고국에선 우리 또래의 아내들이 남편에게 제발 한끼만 나가서 해결하길 바란다. 삼식이는 못난이라고 말한다. 나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늙어가고 힘이 줄어드는 남편을 용기와 사랑으로 3번 아니라 얼마든지 밥을 차려주고 싶다. 여기에서도 Break Time이 있으니 간식도 챙겨주고 성의껏 남편을 보필한다.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유명가수이자 우리 또래의 K여사의 “잠든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잘해 줘야지 했는데, 아침에 눈뜨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말에 동감도 한다. 나의 경우를 비교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다. 


비교적 외출이 많은 편인 나는 행여 남편이 때를 거르는 일이 걱정이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항상 “내 걱정은 말고 볼일 잘 보고 오라”면서 흔쾌히 승낙과 여유를 준다. 옛날의 친정어머니 기억이 새롭다. 아버지의 수저나 식기는 감히 아버지만 쓰시고 상차림에서도 할머니와 아버지의 식탁은 언제나 먹을 것이 진수성찬이었다.


엄마와 나는 부엌에서 간단히 해결하였다. “얘야, 아버지 상을 물리시면 너도 식사를 하렴”, 불만 한마디도 못한 채 어느 땐 기다린다. “아버지 저도 이 식탁에 오면 안될까요?” 아무렴, “막둥아” 할머니는 눈치를 주신다. 계집애는 아무데나 앉아서 국물 한 그릇 있으면 되는 거라면서, 세대차이와 그나마 막내딸이라 다행이었다. 


시골 농가에서도 부농은 먹을 것이 언제나 충분했다. 부엌과 연결된 광 안엔 시루떡과 고구마 찐 것, 과자 종류, 곶감까지 엄마는 장손의 큰며느리였다. 부부만 달랑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감히 남편보고 세끼를 차려줄 수 없다고? 나는 반대다.


더 잘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남편은 알고도 모른 척이다. 남편을 독일에서 만났을 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49년이 되어간다. 우리가 7학년이 훨씬 넘어 노인의 생활인데 부인들마저 황혼이혼이니 하는데 나에겐 언감생심이다. ‘있을 때 잘해’ 유행가 가사는 아니라도 서로를 배려하자.


돈을 벌고 젊고 패기 있을 때의 남편만이 제일은 아니다. 자녀들에게도 아버지의 위상을 높여주고 존중할 것을 알리자. 힘들고 지친 이민의 이방인들인 우리의 생활에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남편을 섬기자.


지금 밖엔 눈비가 세차게 오고 있다. 그래도 일어나서 남편이 즐겨먹는 채소들을 사와야 한다. 브로콜리와 숙주나물, 각종 야채를 섞어서 저녁 식탁을 준비하자. 


그래도 남편의 할 따름이라고 반대하는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설령 부인에게 소홀했던 남편들도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데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가끔 친정엄마를 기억한다. “막둥아! 고향에 두고 온 네 아버지의 산소와 종가를 지켜야지”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던 80이 넘으신 노모의 모습.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하다. 그렇게 조국으로 돌아가시고 치매로 고생하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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