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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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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두 아들 비유
daekim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하니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마 21:28-32)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두 아들 비유”는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하기 위해 들려주신 세 비유 중(마 21:28-32, 33-46, 14:1-14) 첫 번째 것이다. 두 아들이 있는 사람이 어느 날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말만 했을 뿐 포도원에 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는데 둘째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잠시 후 마음을 바꿔 포도원에 가서 열심히 일한다. 이 비유를 마치신 예수님은 그를 둘러싼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을 따랐느냐?”고 묻는다. 그들이 입을 모아 둘째 아들이라 답하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말씀하신다.


간단하고 짧은 비유다. 하지만 이 비유 속에는 다른 어떤 비유들 못지않은 귀한 교훈과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찾아내려면 어떤 상황에서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려 주셨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일주일을 지내며 여러 가지 기적을 베풀고 많은 것들을 가르치셨다.

그 중 “두 아들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예수께서 하신 두 가지 중요한 일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과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대로(슥 9:9)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으로 들어가시니 각종 매매 행위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하신 예수님은 거기 있는 장사꾼들을 다 몰아내시고, 돈 바꿔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런 후 “내 거룩한 성전을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준엄하게 책망하셨다.


그 다음 날 이른 새벽 베다니에서 밤을 지내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다 시장하신 예수님은 길가에 서있는 무화과나무로 다가가셨다. 무화과로 시장기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나무는 잎만이 무성했을 뿐 열매는 하나도 없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향해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하시자 나무가 곧 말라버렸다. 


이 두 사건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임과 동시에 경고였다.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꾸짖으며 쫓아낸 것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시장바닥으로 만든 그들을 향한 채찍이었으며,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한 것은 입술로만 여호와를 찬송하는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로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이 더욱 강해짐과 동시에 예수님을 감시하는 그네들의 눈초리도 더 날카로워졌다. 때문에 그들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에게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며, 또 누가 이 권위를 네게 주었느냐?”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예수님은 “나도 너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알려주겠다.”고 하신 후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 물으신다. 


그들은 서로 상의한 후 모른다고 답한다.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째서 요한을 믿지 않느냐?”할 것이요,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요한을 선지자로 믿는 백성들의 분노를 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도 너희의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라 말씀하신다. 시비를 걸어온 무리를 멀쑥하게 만드신 후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가 “두 아들 비유”다.


이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만 행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인류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다. 아브라함을 인류 최초의 선교사로 임명한 후 그와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을 이 땅의 나그네가 되게 하여 이 민족 저 민족, 이 나라 저 나라로 방황하게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을 인도하며 보호하셨다. 그들이 400년 간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소멸하기는커녕 크게 번성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갈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애굽의 추격 군을 수장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고기를 원하는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하늘 양식 만나를 내려주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마시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삶의 지침인 율법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며 광야를 횡단하면서, 또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투 중에도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반항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등 온갖 죄악을 저질렀다. 그들이 범한 그 많은 죄악들은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한 것이었다. 전능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그들의 언약을 깨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후예인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 자부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가장 경건하고 성결하게 사는 것처럼 자신들을 철저하게 위장했다. 성스러운 모습으로 성전을 드나들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룩하게 기도했으며,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 다니며 구제행위를 연출함과 동시에 그들이 금식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요즘 유행하는 “위장 쇼”를 자연스럽게 펼치며 사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세례 요한은 “너희들은 하나님의 진로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마 3:7)라 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르쳐 “겉은 깨끗하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찬 잔과 대접이며”,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 한 회칠한 무덤 같은 존재들이라”(마 23:25-27) 말씀하셨다.


둘째 아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죄악 된 삶을 살던 세리와 창녀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죄의 길을 걸으며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네들은 회개를 외치는 세례 요한의 음성을 듣고 그들의 죄를 자백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율법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살던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들도 요단강가에 서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세례 요한에게 나와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이 발하는 광야의 소리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선포하시는 천국복음까지도 배척했다. 


그들이 두 아들 중 나중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둘째가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고 하자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에게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리라.”하신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둘째 아들이 결국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포도원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또한 아버지를 완전히 기쁘게 해드린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포도원으로 향했어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두 아들 비유”를 통하여 입으로는 순종하겠다고 서약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불순종을 지적하여 꾸짖는 한편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이들에게 하늘 문은 열린다는 사실을 일러주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아들 비유”는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이 깊이 생각하고 받아드려야 할 중대한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 날 우리들 주위에는 우후죽순처럼 교회가 세워져서 “주여, 주여”를 연발하는 교인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돈독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신도들이 늘어만 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금과 은”을 지닌 교회는 늘어가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새벽마다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성도들은 많기만 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도 허다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삶을 불태우는 이들은 귀하기만 한 것이 오늘날의 실정인 것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외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기만 했던 그 옛날 이스라엘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으며, 표리부동하면서도 가장 의로운 듯 행세하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과 같은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지 말며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약 1:22)이 되어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는 그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들 되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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