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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의 칼럼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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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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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하니, 바리새인들이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22-32)

 

 

여기 기록된 예수님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신 기적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 9장 32절부터 34절에서 들려주는 귀신 들린 벙어리를 낮게 해주신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기적을 보는 목격자들의 생각은 같아 보이면서도 상당히 다르다. 특히 예수님이 그들을 고쳐주신 후 하신 말씀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마태는 이 기적을 예수께서 “사람들이 데리고 온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다.”고 아주 간단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 까닭은 그는 이 기적 자체에 초점을 맞추려 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벙어리이며, 맹인이던 사람이 말하고 보게 되자 모두들 놀라지만 전에 벙어리의 입이 열렸을 때 나타난 반응과는(9:33)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기적”이라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했지만 이번에는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의 경우에는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망언까지 뱉어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들은 그때까지 예수께서 가르치시며 선포하신 것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행하신 모든 기적들을 전해 들었으며, 직접 목격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사렛 목수 출신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소망인 메시아로 받아드리거나, 그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이 사탄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천인공노할 논리를 펼친 것이다. 


그 같은 그들의 기상천외의 주장은 지혜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예수님을 대항하기 위한 악의에 찬 모함이나 궤변으로만 간주하여 넘길 수 없는 근본적인 죄악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취급한 행위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께서는 완악하고, 강퍅한 그들이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은 그의 능력이 사탄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사탄의 왕국은 심한 내분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사탄의 왕인 바알세불이 예수님에게 능력을 부여하여 그의 부하인 귀신들을 쫓아냈다면 그 나라는 망하기 직전에 이르렀다는 것이 예수님의 지적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고 물으신 것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모순된 자가당착적인 것인가를 지적하신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는 악령을 몰아내고, 저주에 묶인 사람들을 풀어주는 우리나라의 무당과 같은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솔로몬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귀신을 축출하는 비법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요세푸스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악령을 몰아내어 영육 간에 정상적인 인간의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이 건전한 몸과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부여했다고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유대인들 중에 귀신을 몰아내는 사람들이 있었음은 역사적인 사실이기에 예수님은 “내가 사탄의 동업자가 되어 귀신을 몰아냈다면 너희 조상들도 사탄과 연합하여 악령을 쫓아내었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자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그들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친 것이 악령의 힘 아닌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면 악의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동트기 시작했음을 일러주신 것이다.


 그가 하신 말씀의 의미를 그들이 확실히 깨닫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려면 그 강자를 결박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신다. 이는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그에게 사탄이 찾아와 인류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시려는 그의 발길을 잡으려 시도했을 때 그를 물리치고 “사탄아 물러가라.” 호통하신 순간에 사탄은 이미 결박 당했음을 상기시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 후 계속하여 예수님에게 다가와 그를 괴롭히는 악의 세력은 사탄의 잔당일 뿐인 것이다.


그는 사탄의 힘 아닌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하심을 밝히신 후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이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말씀하신다. 그를 따르려면 중립지대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세상에는 중간지점에 서는 사람들이 많기만 하다. 이쪽저쪽을 넘보며 상황을 살피다 유리한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요, 삶의 지혜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좁은 길과 넓은 길”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세상”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믿는 자의 권리이며 의무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그를 따르는 자들의 유일한 선택임을 일러주신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으니 그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악이며, 어째서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성령은 주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내린 성령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성도들이 세상 끝까지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성령의 기능은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에게 전달하며, 그것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권위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심은 물론 그것을 말하고, 가르치신 것을 행하셨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들에게 알려주시며, 그것을 말하고, 행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오묘한 비밀을 깨달아 믿기 시작하는 백성들과는 달리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도, 깨닫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를 배척하며 사탄과 연합한 악의 세력으로까지 몰아부친 것이다. 성령을 거역한 죄악이었다. 


성령에 대항한 죄는 어째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해 성령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구원의 필수적 요건인 “회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옳고 선한 것을 따르며 사랑할 줄 모르고, 잘못되고 악한 것을 사랑하며 추구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사탄의 세력으로까지 단정하는 무서운 죄악을 범한 바리새인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몰랐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도 회개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의 대상에서 스스로를 배제시켰다.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죄성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그 누구도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죄의 값인 사망에서 면죄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영원한 낙원을 되찾을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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