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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어느 재일동포 이야기
cdpark

 

 

 일본의 월간지 <문예춘추> 8월 호에 유봉식(일본명 ?木 貞雄)이라는 재일동포 사업가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그는 지난 6월 흡인성 폐렴으로 88세의 나이에 타계할 때까지 보통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으로 일본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와 철폐, 그리고 고객제일주의를 솔선수범하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멸시와 소외감을 극복, 일본 Taxi 업계의 신화적 존재로 성공한 자랑스런 재일동포인 유봉식씨의 명복을 빌면서 그가 성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한다. 


 물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롯데의 신격호씨, 그리고 세계적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씨 등이 있으나 이들은 아직도 건재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 


 유봉식씨는 1928년 경상도 남해에서 출생, 15살인 1943년 형이 살고 있는 일본 교토로 건너가 입명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명관 대학 법대에 입학하였으나 사업 관계로 대학을 중퇴하였다. 


 1957년 주유소를 경영하다 1960년 택시 몇대로 “미나미” 택시회사를 설립 1963년 “카츠라” 택시를 합병 운영하다 1977년 택시회사 이름을 영어의 Minami 와 Catura의 첫 글자를 따서 회사이름을 MC Taxi로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지나치고 엄격한 여러 규제로 택시사업이 무척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그는 택시 요금을 인하하여 경쟁사들의 격렬한 반대와 비난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투쟁, 1985년 결국 오사카 지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고, 엄격한 여러 규제를 완화-철폐하는데 앞장서 일본 Taxi 업계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새로 입사한 택시 기사들에게 반드시 손님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릴 때 “잊어버리신 물건은 없어신지요“ 하는 말을 하도록 교육을 하였고, 장애손님 우선 승차와 운전기사들에게 유니폼을 입혀 손님들의 호감을 사기도 하였다. 또 운전기사들의 숙소도 챙겨주고 직원들과 함께 화장실 청소까지 손수하는 모범을 보였다 한다. 


 그 후 1995년 MK그룹에서 퇴직, 2001년 산업신용조합회장에 취임해 금융업에 종사한 전설적인 자랑스런 재일 동포사업가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한국 출신의 김정순 씨와의 사이에 3남2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 외 많은 재일동포들이 일본의 사업계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양지, 이희성, 유미리, 현월 등 한국계 동포 문인들이 권위있는 아꾸다가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끝으로 한국 사회에서 재한 일본인들의 성공담 같은 자랑스런 이야기를 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몇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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