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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2) -덕진진(德津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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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2017년은 한국이 개천한 단기로는 4,350년이 되는 해이다. 반만년의 세월 속에 3국으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통일이 되면서 왕조가 바뀌었던 그 시간에 우리 주변국들도 수많은 흥망성쇠를 반복하면서 문명이 발달하고 국력이 부강해 지다 보니 대륙 끝에 붙은 조선은 자연 침략의 대상이 되곤 하였었다.


 통일신라까지 반도 안에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던 세월이 흐르다 고려시대부터 이조왕조에 이르기까지 그 침략은 더욱 노골적으로 우리들을 괴롭혀 남쪽에서는 일본이, 북쪽으로부터는 중국이 우리 강토를 여러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그 전란의 참상이야 여기서 거론할 내용이 아니지만 오늘 보는 덕진진은 병자호란 뒤 숙종 5년(1679)에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12진보 중 가장 강력한 포대이며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지이다.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되었지만 후일에 한번 요긴하게 사용하게 된다.

 

 

 


 19세기에 들어서며 세계의 열강들은 식민지를 넓히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닐 때 신흥강국이 된 불란서와 미국은 아직 아무에게도 속국이 되지 않은 한국에 눈독을 드리며 집적대기 시작하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조선에서는 쇄국정책으로 이들을 막기 급급하였다. 현대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가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1866에 강화도에 침공한 사건을 병인양요라고 한다. 


 이때에는 재래식 무기 밖에 없었던 조선의 양현수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 

 

 

 


 같은 해인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과의 교역을 위해 황해도 황주목 삼전면 송산리에 정박했다.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측은 제너럴 셔먼호에 퇴거를 경고했으나, 그들은 약탈을 자행하며 대동강 상류 만경대 부근에 정박했다. 그들을 막기 위해 배에 접근했던 이현익쪾박치영쪾유순원이 붙잡혔고, 조선측은 석방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월 22일 조선은 화공 포격을 실시하였고, 결국 24일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버렸다. 소위 셔먼호 사건이다. 

 

 

 


 미국 국무부는 조선과의 통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함을 거느리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871년 조선측과의 교섭책임을 주청 특명전권공사 F. F. 로에게 위임하는 동시에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에게 조선원정을 지시했다. 


 로와 로저스는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이르러 휘하의 함대를 집결시킨 뒤 콜로라도호를 비롯한 호위함 3척과 포함 2척, 대포 85문, 병력 1,230명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향했다.


 1871년 4월 23일 로저스는 공격작전을 지시하여 450명의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했으며 이튿날 아침 미국 해병대는 전진하여 덕진진을 공격, 점령하고 이어 광성보로 육박해갔다. 결국 남장포대가 육지로 침공해 오는 배후의 적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인가 보다. (다음호, 광성보에서 이어진다.)


 신미양요 때 무너진 성곽과 돈대, 포대 등을 1976년 복원하고 대포도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현재 덕진진에 가면 남장포대를 볼 수 있는데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해상에서 적에 노출되지 않은 반월형 천연 요새를 확인할 수 있다. 사적 제 226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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