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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4)
Imsoonsook

 

 

 

고행과 기쁨의 길(3일차)


 어둠이 막 걷혀가는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섰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일출을 준비하는 동녘하늘의 경이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몇 장 담고 소박하면서도 편안했던 도시 에스파냐를 지나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오늘은 주비리(Zubiri)를 거쳐 자발디카(Zabaldica)까지 약 30 km 전진할 예정이다. 다소 긴 일정 일듯하나 코스가 원만하여 무리가 없을 듯하다. 우리의 컨디션이나 현지 상항을 감안하여 융통성을 두었으니 목표 달성이 되건 안되건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숙소는 충분한 휴식을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까미노는 아기자기 하게 단장된 마을을 벗어나 이내 들녘으로 이어졌다. 밀밭과 목초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싱그러운 초록 물결에다 배꽃, 복숭아 꽃이 만발하여 운치를 더해 준다. 힘겹게 오르던 피레네 산맥도 하루 사이 멀찍이 물러서서 온 구릉을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다. 낮게 않은 구름이 약간 신경 쓰일 뿐 걷기엔 더 없이 좋은 여건이다. 


 오늘도 길 위엔 우리 부부뿐이다. 그래서 외롭거나 수선스럽지 않다. 40년을 한결같이 걸어 온 인생길처럼 서로 의지하고 때론 자유롭게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걷기에 집중 할 수 있어 좋다. 


 코스는 어제의 산길에 비하면 양호하나 오르막 내리막 길이 연속으로 이어져 빈틈을 주지 않는다. 거기다 주비리에 가까울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의를 입었지만 잠깐 사이 생쥐 꼴이 되었다. 비도 피할 겸 동네 초입의 바에 들어갔다. 테이블 마다 빼곡히 앉은 현지민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무관심한 듯 하면서도 격려를 보내는 느낌이 별로 싫지 않았다. 


 얼마 후 비는 멎었으나 도로가 유실되고 진흙탕 길이 또 만만하지 않았다. 굴곡 없이 평탄하기만 한 순례길은 아마도 잘못된 길일 것이다. 하나를 넘으면 둘이 기다리고 그 뒤엔 더 큰 난제가 버티고 있는 길, 차츰 까미노의 속성이 읽혀지기 시작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원만하리라 여겼던 30km 거리는, 수시 바뀌는 자연현상에 대한 대처와 그로 인해 쉽게 고갈되는 체력을 감안하지 않은 평면적인 숫자에 불과했다. 다행히 넉넉한 시간이 그 간극을 극복하는데 명약이 되었다. 


 나무 그늘아래 판초를 깔았다. 준비한 샌드위치와 바나나로 거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옆엔 강물이 불어 콸콸거리고 비 개인 들판은 생기가 충만했다. 배낭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짙푸른 하늘이 언제 비를 뿌렸냐는 듯 벙글거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휴식이다. 


 '저기만 건너면 되는데. ' 아래 위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남편이 아쉬운 듯 탄식을 한다. 오늘의 숙소가 언덕 위에 빤히 보이건만 다리가 유실되어 건널 수 없다. 십여일 이상 내린 비로 곳곳엔 물난리가 났고, 코스도 일시 변경되어 둘러가기 일쑤다. 할 수 없이 오던 길을 되돌려 강을 건넜다. 목전의 숙소가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온몸이 천근만근으로 가라 앉는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다잡으며 겨우 산 중턱 성당에 들어섰다.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브리지야 꽃 무리가 우리를 먼저 반겨 주었다. 잠깐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우리가 지나온 고해의 바다를 품은 경치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곳에서 하룻밤 유숙할 생각을 하니 지나온 고생길이 뿌듯함으로 채워진다.


 막 꽃 단장을 마친 성당 관계자들이 민망한 듯 우리 곁에 둘러섰다. 이틀 후의 개장을 준비하느라 그들도 우리만큼 지쳐 보인다. 담당 자매님은 물과 간식을 챙겨 나오며 오늘도 몇 사람 돌아갔다며 미안해 한다. 한숨을 돌리자 3km 거리의 다음 알베르게까지 도보로 아니면 자신의 차로 데려다 줄 테니 선택을 하란다. 


남편은 지체 없이 전자를 택했다. 그의 용감한 선택에 나보다 자매님이 더 감격 해 했다. 우리는 뜨거운 포옹을 나눈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산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까지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계속 손을 흔들며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몸은 마음 먹기에 달렸는지 험한 산길도 걸을 만 했다. 다만 배낭을 내리고 쉬는 빈도가 늘었을 뿐. 땅거미가 내릴 즈음 산길을 벗어나 다행이었지만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멀리 숙소 예정지 빌라바(Villava)를 바라보며 혼신을 다했다. 


 7시경 마을 초입의 수도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자 담당 형제님이 우리의 배낭을 양 어깨에 메고 안내해 주었다. 입구와 숙소까지 거리도 만만치 않아 감사했는데 등산화를 벗으니 신문지를 뭉쳐 그 속에 넣어준다. 신발 습기 제거엔 그만이란다. 그리고 더 감격할 일은 자리가 많이 남은 도미토리 대신 독방을 배정해 주었다.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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