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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그랜드캐년 트레킹(5)
Imsoonsook

 

 ‘미세스 Y 가 쓰러졌다’, 지름길 팀 C 부부의 일성에 잠깐 휴식에 들었던 일행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전날의 무리함에 수면 부족까지 겹친 상태에서 작열한 태양 속을 장시간 걸었으니 아무리 장사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을 터였다. 


 순간 일행 중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곡물을 빈병에 받아 한 배낭씩 메고 급히 내려가고 일부는 공원 레인저(ranger)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인디언 가든’으로 향했다. 첩첩이 협곡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휴대폰은 무용지물 이었고 오르내리는 하이커도 없어 도움을 청하기도 난감했다. 한 구비 돌때마다 그토록 수려했던 경관이 변고를 당하고 나니 고립무원과 다를 바 없어 당황되기도 했다.


 C 부부와 나는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며 추이를 관망하기로 했다. 몇 뼘 안 되는 나무그늘과 얕은 계곡물에서도 그토록 행복했던 순간은 눈 깜빡할 사이 사라지고 불안감과 초조함에 한기까지 엄습해 왔다. 그리곤 트레일 입구에 붙어있던 경고문들이 애타는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랜드캐년 트레킹 중 일사병으로 쓰러져 구조되는 사람이 한 해 평균 250명이라는 통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어느 여성 마라토너가 트레킹 중 변을 당했다는 비보 등 하루 만에 콜로라도 강까지 다녀오는 하이커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안내문들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일시적인 탈수현상으로 약간의 휴식과 수분만 보충하면 다시 재개하리라 기대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영상들은 나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게 했다. 힘들지만 일행과 함께 내려가지 못한 점이 후회되었고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어 더욱 답답했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혼신을 다하여 올라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다. 등산화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부은 발은 물론 발목과 발가락 통증이 심했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무사함에 귀 기울이며 모퉁이를 돌다보니 멀리 일행들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보였다. 거리상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파악은 안 되었으나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어 한동안 지켜보다 돌아서길 수없이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아득한 골짜기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뛰어오고 있음이 시야에 들어왔다. 때론 개미처럼 가끔은 거인의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뜻밖에 내 남편이었다. 강한 햇볕과 탈수로 인해 잠깐 실신했던 J 는 물세례와 응급조치로 회복 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공원 어딘가에서 돌고 있을 레인저를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고 했다.


 우리에게 낭보를 전한 남편은 그길로 ‘인디언 가든’을 향해 다시 달렸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비록 그이와 보조를 맞출 순 없었지만 큰 변고가 없음에 감사하며 혼자 을씨년스런 숲을 헤쳐 갔다. 


 온몸에 수돗물을 끼얹으며 우리의 요청에 응했던 레인저는 얼마 후 J 를 포함한 우리 일행을 대동하고 ‘인디언 가든’으로 들어섰다. 우리의 우려가 기우였다는 듯 생각보다 가뿐해 보이는 J 를 보니 온몸의 긴장이 일시에 풀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J 가 트레킹 도중 쓰러진 원인은 짐작대로 수면 부족, 피로 누적, 체온 상승, 오브페이스 그리고 심한 공복 등 이었다. 체면 불구하고 계곡물에 뛰어들어 열을 식혔던 점과 설익은 밥을 힘겹게 삼켰던 그 순간들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할 원동력이 된 셈이었다. 자연 속에 들면 모든 것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응급조치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일사병으로 이어질 뻔한 위기를 모두 합심하여 넘기고 나니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예정된 시간 안에 ‘사우스 림’ 도착은 이미 멀어져갔고 어둠 속을 더듬어 올라야 하는 위험한 코스만이 우리 앞에 태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 후에 트레킹을 재개하겠다는 지름길 팀을 남겨놓고 또 다시 장도에 올랐다. 석양에 붉게 물든 협곡은 잠깐 장관을 이루더니 이내 어두운 골짜기로 변해버렸다.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하나같이 휘청거렸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보충할 시간도 없이 다시 길 위에 선 사람들, 졸음과 허기짐 그리고 이어지는 낭떠러지를 간신히 피해가며 무려 열여덟 시간 만인, 밤 11시에 출발지 사우스 림에 도착했다. 


 그리곤 칠흑의 그랜드캐년을 내려다보며 다시 꼭 오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아름답기만 하다면 별 매력을 못 느꼈을 협곡이련만 찐한 고통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게 한 곳이기에 아쉬움이 배가 되었다. 


생과 사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날, 살아오면서 가장 길었던 여정이었다. 멀리 네 개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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