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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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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도 가고 싶은데. ”


“남자들끼리 만나는데, 집에서 쉬지”


남편의 친구가 모닝커피하자고 만나자는 전화를 옆에서 들었다. 분명 S 다.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급히 양치질만 하고 핸드백을 메고 앞장섰다. 이 중국인 S 이야기는 전에도 언뜻 들었다. 꼭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언젠가 만나리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왔다, 드디어.


오전 8시 반, 팀 호튼,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40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중국인 S, 머리는 짧은데 새집도 지었다. 이 분은 만나자 마자 나에게 반갑다며 악수를 청한다, 손이 따뜻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자기 딸은 수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수영장에 데려다 주고 수영하는 동안 우리와 모닝커피 한잔 하자고 했던 것이다. S의 딸은 현재 10세, 이 부부는 결혼해서 20년이 넘도록 애기가 생기질 않아서 부부가 상의한 끝에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10년 전에 중국에 가서 입양해온 딸이란다.


 말끝마다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의 딸, 나의 딸)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S의 눈에는 이 딸이 내 자식이라고 가슴에 계속 새겨가며 말함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분은 자기 자식을 낳아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자기가 낳은 친 자식이 있다면 그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딸을 입양해 와서 키우는 일이 자기 부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한다. 자기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형제, 조카들까지 모두 행복하다고 한다. 


핸드폰에서 딸의 사진들을 보여 주는데, 복스럽고 정말 예쁘게 생겼다. 아주 똑똑하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수영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스케이트도 잘 타고, 노래도 잘 부르고, 피아노도 잘 치고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그 부부의 인생에는 오로지 이 딸 밖에는 없다고 한다. 이 딸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목숨을 건다고 했다.


세상에 피가 섞였나? 살이 섞였나?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입에 붙은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는 물어 보았다. 이렇게 정성과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이 딸을 키웠다가 나중에 배신을 한다든가 못된 짓으로 나온다면 그 상처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 분은 “나는 그런 것 생각해 본 일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 우리는 너무 너무 해피하고 딸도 해피하고, 감사와 만족이 넘치게 산다”며 뭘 더 바라느냐에 힘주어 말한다.


나 같으면 속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따지고 망설이고, 나중을 미리 보면서, 마지막엔 좋은 꼴 못 볼 텐데, 결국엔 부정으로 끝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S는 계산하지 않는단다. 무슨 계산이 필요하냐고, 내가 딸 때문에 행복하다는 데에만 초점을 둔 삶, 참 심플했다. 우리 같이 복잡하지 않은 것 같다. 대륙성 민족이라 그런가? 나는 S에게서 한없이 넓은 중국 대륙의 광활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듯, 가슴이 쫙 펴지는 또 다른 성숙한 긍정을 보았다.


S의 마음과 그 정신이 부러웠다. 전에 한인양자회 모임에도 가보았지만, 남이 낳은 애를 저토록 목숨 걸고 키우나?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경지에 사는 분들, 어느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인가.


옷, 신발, 머리 모양 등 외모에 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단다. 허름한 잠바에 작업복 바지, 마당 일하다 그냥 신고 나온듯한 신발 등, 오늘도 수수 털털한 모양으로 나왔다. 딸 교육 시키고, 아내와 딸과 세계 어느 곳이든 여행을 즐기는 일 외에는.


자기 부부와 딸은 잡채, 불고기, 갈비, 김치, 깍두기, 감자탕 등 한국음식을 되게 좋아하고, 어느 나라 음식이든 다 좋아한다며 다음엔 함께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고 한다.


부모님이 정통 중국인이니 그도 중국인이지만,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는 S. 아마도 부모의 영향인지 영어가 중국식 악센트가 들어갔지만, Yes, No가 분명한 당당한 의사 표시가 딱 맘에 들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우리 인생 아닌가. 보람 있는 일을 한번이라도 하고 가야지 않겠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감동의 주인공, 용감한 사나이, 현재 62세, 20년 차가 넘는 현직 치안 판사. ‘마이 다럴!’ 이 한마디가 S의 인생 자체다. 참으로 존경심이 뜨겁게 일어난다. 진짜 멋지다.
말끝마다 입에 붙은 마이 다럴! 마이 다럴! 나는 보았다. 그의 가슴이 사랑의 불꽃으로 활활 타고 있음을. God Bless S!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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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미디아(Media)


 
 레디! 쓰리, 투, 원! 


인도인 친구 자스비얼과 그녀의 친구는 환한 조명 아래 톡쑈의 녹화를 시작한다. 인도말로 뭐라고 뭐라고 웃으면서, 카메라 앵글에 눈을 맞춘다. 고개도 약간 옆으로 까딱까딱 움직이고 인도 사람 특유의 제스추어가 한국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자스비얼이 방송에 나간다 해서 어떻게 생긴 방송국인가? 궁금했다. 방청객이 적어도 몇 백 명이라도 모여놓고 하는 방송국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 물어 보니 여기는 그런 방송국이 아니고, 이렇게 녹화만 하고 녹화된 파일은 다시 편집하여, 인도의 TV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등 여러 곳과 몬트리올, LA, 뉴욕 등 인도인의 TV 방송과 라디오방송국 등 즉시 60여 곳에 보내는 미디아(대중매체)란다. 


 토론토에는 이런 인도 사람들의 미디어 그룹이 여러 곳이 있단다. 캐나다의 역대 수상들, 온타리오 역대 수상들, 각 장관들, 각 부처의 단체장들과 감사패를 든 큰 사진들과 상패들이100개가 넘어 보이는데 벽에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색색의 터번을 쓴 사람들이 주인공인 사진들이다. 


 매주 월요일 톡쑈를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씩 작년 9월부터 시작했다 한다. 나는 녹화장소를 나와 유리문으로 볼 수 있게 한 장소에 앉아서 그들의 녹화하는 것을 보았다. 30여 번째를 넘어 출연했다 해서 그런지 살짝 살짝 웃는 모습에 말하는 것과 손놀림, 카메라를 의식하는 자세가 부드럽고 능숙해 보였다. 


 27분 정도 지나니, 일단 5분 정도 쉬는 시간이 되어,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 온 다음, 바로 또 시작을 하여 28분 정도 하고 끝남을 보았다. 꼭 1시간이다. 


 자스비얼네 집으로 함께 오자마자 오늘 출연한 유튜브를 보니, 벌써 편집을 끝내어 그곳에서 한 녹화보다 배경이나 화면이 바뀌면서 더 좋아 보였다. 나는 인도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자스비얼한테 물어 보았다. 


오늘 톡쑈의 테마가 무엇이었느냐고 하니, 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에 관한 조언들과 터머릭(turmeric = 강황 = 울금)에 관한 정보들이라고 했다. 터머릭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강황 이라고도 하고, 울금 이라고도 하는데, 커큐민(curecumin) 이라는 것이 주성분이며, 각종 성인병 예방, 면역력과 기억력 증강, 비만 예방에 큰 도움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지난주에는 담배에 관한 것을 했단다.


그 동안 건강에 관한 음식물의 정보들과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 간단한 음식 만드는 법 등 다양하게 했는데, 다음 주에는 무얼 할까 생각 중이라며, 순간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것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걱정마라, 내가 너에게 많은 정보를 줄 것이다. 건강에 관련된 각종 정보들, 예를 들면, 음식물 중 가지(eggplant)에 대한 것이라면, 성분은 무엇 무엇이고, 좋은 점은 무엇이며, 어디어디에 좋고,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든가 내가 다 알려 줄게, 모링가, 씨네몬, 훌랙씨드, 비터멜론, 케일 등 수퍼 곡물이라는 퀴노아, 치아, 각종 특수 작물 등에 관하여. 나는 음식물 뿐만이 아니고, 교육적인 면, 인문학적, 생활의 지혜, 취미, 노후문제 등 그 어느 면에 대해서라도 다 알아보아 줄 수 있으며, 그런 것에 대한 정보 수집을 좋아해서 모아 놓은 것이 엄청 많으니 너에게 다 말해 줄 것이다” 


자스비얼은 나를 끌어안고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헬렌 땡큐! 헬렌 땡큐!” 끝이 없다. 그 동안 인도라는 나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지만, 조금씩 알고 보니 부러운 점도 참 많다. 자스비얼만 보더라도 자선하는 일, 세계 곳곳으로 퍼져가는 방송 일, 또 무슨 좋은 일을 하고 있나? 궁금증이 커간다. 


 저렇게 녹화한 톡쑈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하루 24시간 각종 정보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간단다.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보고 들으니 도움이 안 되겠나. TV를 켜니 토론토에 인도 TV 방송하는 곳이 30 군데도 넘는다. 유튜브에 보면 조회숫자가 나온다고 이거 보라며 나에게도 보여준다. 몇 만, 몇 십만 명이 넘는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난다고 한다. 


 돈 받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행복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좋은 소식을 들어서 더 건강해지고 바르게 살며 복된 삶을 누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동감이다.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선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자스비얼은 지난번에도 인도 옷을 선물로 주더니, 또 다른 인도 옷을 입어 보라고 한다. 입혀 보더니 싸이즈가 잘 맞고 예쁘다며 아주 선물로 준단다. 


 “헬렌은 인도 춤추는 것 좋아하잖아” 친구들과의 모임 날짜들을 알려주며 꼭 오라고 한다. 나를 아주 인도 사람으로 만들려나 보다. 자스비얼이 다음엔 헬렌도 TV 출연 함께 하잖다. 오 마이 갓! 인도식 독한 카레 냄새와 인도 민속 음악들이 머리 위에서 맴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여생을 보내는가? 톨스토이를 따라 갈수는 없지만 참회록이라도 써야 되나? 삶이 출렁거린다. 영국의 소설가 버나드 쑈의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이 나의 마지막 말이 될 것 같다.


 꽃으로 다가오는 자스비얼에게 찬사를 보낸다. 좋은 일 하고 싶다고? 찾고 찾으면 만날 것이다. 크고 작은 일을 왜 따지겠나. 4월인데 손님 같은 춘설이 펄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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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물 한 모금이라도

 
  
 토론토의 서쪽 미시사가, 한인교회로서는 교인숫자도 제일 많고, 교회 건물도 제일 크다는 큰빛교회 지붕이 저쪽에 보인다. 큰빛교회 입구의 맞은편 쪽으로 머지않은 곳에 초라한 듯 납작한 몰, 그 곳의 한 유닛에 와 있다. 전에는 이 몰이 후리마켓으로 틀이 안 잡히고 어수선했었다는 데,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해서 깨끗해졌지만 빈 유닛도 더러 있고, 주중이라서 그런지 한가했다.


인도계 여성들의 옷 가게도 많고, 인도 액세서리 파는 곳도 한집 걸러 한집인 듯 자주 보였다. 핸드폰에 관련된 가게도 한집 걸러 한집일 정도. 인도 여자들의 액세서리 문화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발걸이 등 호화롭다. 흑인들이 하는 가게와 흑인들도 많이 보인다. 


 인도 친구 자스비얼이 한 달에 한번 봉사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와 보았다. 8개월 전부터 시작했다는 이 프로그램, 그 주변의 좀 경제적으로 도네이션 할만한 사람들은 도네이션 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도네이션 들어온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등을 받아가게 하는 곳에 자스비얼은 봉사하러 온 것이다. 


 소규모인데 정부에 등록을 한 자선 단체란다, 정부로부터 도움 받는 것은 없고, 매주 화요일에 문을 열며 인도인뿐만 아니라 캐네디언이면 누구나 도네이션을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하면 아름아름 소문을 타고 찾아온다며, 오늘 화요일은 자스비얼과 봉사하는 사람 두 세 명이 일하고, 다음 주 화요일은 다른 친구가 와서 하는 등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봉사 한단다.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딱 맘에 든다. 그래서 자스비얼을 좋아하는 이유다. 


 토론토의 한인봉사회에서도 연말이면 ‘사랑의 양식 나누기’와 1년에 두세 번 정도 라면과 떡국떡, 된장과 고추장 등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스비얼 친구들이 나를 반갑다며 허그를 한다. 향수를 뿌리고 갔어도 감출 수 없는 김치 냄새 나는 동양 여자를! 그들의 품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친구들은 오늘 당번이 아니라도 시간 나면 한 번씩 들려서 물건이 얼마나 있나? 확인도 하고 뭐라도 갖다 놓고 간단다. 자스비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네이션이 많이 들어와야 한단다. 나누어줄 물건이 없으면 되겠나. 이따금씩 누군지 무언가 한 보따리씩 들고 와서 놓고 간다. 도네이션으로 들어온 식료품들이다. 인도 쌀(2kg, 3kg 정도 등과 다른 쌀들), 스파게티, 마카로니 국수, 식용유 종류, 밀가루, 설탕, 소금, 과자류, 시리얼, 피넛 버터, 캔에 들어 있는 콩 종류, 물비누, 자벡스, 생활 필수품 등과 의류 등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식료품들을 필요한대로 달라하면 자기 주소와 이름 등을 적고 가져간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왔는데 운동화도 나이키 신형 새것으로 신고, 잠바도 그 비싼 캐나다 구스를 입었는데 빈손으로 왔다. 나는 속으로 쟤는 또 뭐야? 나는 인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눈치만 슬쩍 보는데, 자스비얼이 한참을 얘기 하더니 작은 쌀 한 포를 꺼내 준다. 새 신발에 새 잠바를 입었어도 쌀이 없었는가 보다, 뭐가 잘 안 맞는다. 


 인도 사람들도 빈부의 차가 심해서 부자는 무지무지하게 부자이고, 어려운 사람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한 인도 남자 70 세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뭐라 뭐라 한다. 자스비얼은 쾌히 승낙하고 필요한 것을 집으라고 한다. 그는 피넛 버터, 식용유, 스파게티, 과자, 쌀, 콩이든 캔을 갖다 놓는다. 나는 속으로 셈을 해보니 한 25불 정도가 될 것 같다. 


 자스비얼은 집에서 올 때, 큰 가방에 준비한 시리얼들과 집에서 썼던 플라스틱 봉지도 모아서 갖다 놓는다. 맞다, 손으로 여러 가지를 들고 갈 수는 없고, 물건을 담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므로, 어떤 사람은 아예 튼튼한 주머니를 가지고 온다. 


 “나도 인도에서 살 때에 배고프고 가난하게 살았어. 지금은 많이 먹어서 살이 너무 많이 쪘어” 살을 빼야 한다는 자스비얼. 가슴보다 더 나온 배를 쓰윽 쓱 문지르며 양 볼이 터지게 웃는다. 나를 포함한 말이다. 눈빛을 아래로 고개를 옆으로 살랑 살랑 흔드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닌데 배가 터지게 먹는다는 건 배고픈 사람들에게 죄악이잖아, 자신을 반성하는 듯 보이는 것은 내 생각일까. 


 20kg짜리 설탕 한 부대가 들어왔는데, 만져 보니 속에 있는 설탕이 굳어서 딱딱하다. 이 일을 도와주어야겠기에 캔으로 톡톡 쳐보아도 잘 깨지지가 않는다. 설탕 부대 종이가 찢어지면 난리 날 판이니, 팔을 걷어 부치고 설탕 부대를 살살 뜯고, 작은 스텐 삽으로 뭉쳐진 설탕을 깨뜨리며, 지퍼 백 20여 개에 옮겨 담는 일을 했더니 그것도 일이라고 오른쪽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어디 가서 쌀을 구해 가지고 밥을 해 먹겠나, 정부에서 주는 돈 가지고 모자라나 보다. 이런 곳에서라도 쌀을 줘야지, 그렇다. 배고픈 자에게 밥을,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이라도 주어서 마시게 해야 한다. 살아있음으로… 


 작은 규모지만, 매주 한 번씩 문을 여는 인도사람들의 이 작은 자선단체가 곳곳에 있다니 부러웠다. 그로서리 쇼핑할 돈이 없다, 돈이 없다? 그 얼마나 절망이며 절박한 일인가? 고통이며 아픔이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삶에 그 어떤 비전이라도 가질 수가 있겠나,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음을 내가 겪어봐서 안다. 그것도 외국 땅에서.


 이런 자선하는 일이야 말로 구원의 희망이 아니겠나, 희망을 주는 일, 말로만 마음으로만 자선을 해야 한다는 건 위선 일뿐이다. 안다면 실천이 관건이고 그런 길을 만들고 실천해 가는 자가 선구자 아닌가. 


 슈퍼마켓에 가면 한쪽에 후드뱅크 통이 있다. 음식물을 어려운 사람에게 도네이션 하는 통이다. 스파게티 국수를 한 박스라도 사서 푹 넣고 와야 하는데, 생각하고 망설이고 뒤돌아선 일이 그 몇 번이었나. 배터지게 먹으면서도 배고픈 자를 외면하는 나는 위선자다. 위선자에게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 오늘 당장 실천할 것이다.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세 번만 하면 몸에 밴다. 몸의 세포 세포에 배어서 안하고는 못 배길 테니까.


 부자나 가난한자나 한끼 한끼 해결하다 어느 날 만행(卍行)도 없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정사실. 물 한 모금이라도 베풀다 가야지. 하늘을 산책하는 저 구름처럼, 은하를 흐르는 저 별처럼 흐르고 싶다.


 토론토에는 인도 방송국이 여러 곳 있단다. 한국 방송국은 ALL TV 한 곳이고, 다른 한국 TV 방송은 조금 시간을 짧게 하는 것으로 아는데, 자스비얼은 인도 방송국의 톡 쇼에도 나가고, 간단한 음식 만드는 것도 가르친다. 유튜브에도 많이 올려있는 것을 보았다. 나보고 방송에도 함께 나가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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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명품이 뭐길래

 

 

 누구네 딸 시집가서 사는 이야기이다. 


 “정말 성질 나서 돌아 버리겠네” 집의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핸드백을 세게 내 던지며, 상스런 말이 나오려 하는 것을 아들이 옆에 있어서 참았다는 딸. 뒤따라 들어오는 남편에게 “당신 이런 짝퉁 가방 다시 한 번 사왔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알죠?” 벌떡대는 가슴에 분은 풀리지 않았단다. 


 지난번에 사위가 출장 갔다 오면서 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샤넬 가방 짝퉁을 사왔단다. 아내에게 선물이라며 진짜와 똑같으니 누가 보아도 이건 진짜라고 하면서. 보아하니 어쩌면 짝퉁도 이리 잘 만들었는지 정말 진짜 같았단다. 진짜는 아니지만 거의 대리 만족을 느끼며 진짜처럼 가끔 들었다는 그 샤넬 핸드백. 


 어느 날 프랑스에서 온 사장 내외와 미팅이 있어서 나갔는데, 무심코 그 샤넬 가방을 들고 나갔단다. 아니 이게 웬걸? 사장 부인이 내 가방과 똑같은 샤넬 명품 가방 진짜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닌가? 


‘분명히 진짜였어. 가슴은 콩콩 뛰고, 내 가방을 슬며시 식탁 밑으로 내 허벅지 위에 놓고 식탁보로 가리고 있었어. 무슨 잘못을 저지르다가 들킬까 봐 나만이 하는 행동,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만남의 반가움과 대화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속으로 씩씩대며 남편에 대한 미움만 커가고 있었어. 그래 출장 갔다 오면서 제 아내에게 선물이라고 짝퉁 가방을. 오늘 당신 제삿날이다. 돈 없으면 사오지를 말일이지 짝퉁을 사오다니. ’ 


 명품가방이 뭐길래.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단어들, 명품, 짝퉁, 카피. 짝퉁을 순수한 우리말로 말하면 가짜. 그 프랑스 사장 부인은 사실 상대방이 가짜를 들었는지? 진짜를 들었는지? 안중에도 없었을 것으로 본다. 가짜를 들었거나 진짜를 들었거나 본인만 안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진짜를 들었다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상대방이 짝퉁을 들었다면 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남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관심이 있은들 남의 일인데 몇 시간, 혹은 며칠이나 가겠는가? 남이 아는 것이 그 무슨 대수인가? 


 “아니 도대체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샤넬 명품가방이 얼마라니?”


 “미국 돈으로 4천 5백 불에 세금. 캐나다 돈으로 치면 5천불이 넘어. ” 


“그럼 그 명품이라는 루이비통 가방은 얼마나 한다니?”


“그것도 디자인에 따라서 가격이 여러 가지, 최소한 미국 돈으로 2천불에서 3-4천불에 세금…”


“너는 그 명품 가방이 그렇게도 좋으냐?” 


“좋고 나쁘고가 어딨어? 들어보면 알아, 우선은 내가 만족이야. 쓰면 쓸수록 길이 나서 더 좋아지고 질리지가 않아, 그래서 명품인가 봐, 남이야 뭐라던 간에 내가 좋은 걸. 훼레가모 구두 한번 신어봐 얼마나 편안하고 예쁘고 튼튼한지, 신어봐야 알아 그리고 엄마는 가짜 다이아몬드반지 큰 것 끼고 다니고 싶어? 말해 봐, 말해 봐, 왜 말 못해?” 하더란다.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 반지도 그렇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구별이 잘 안 된다. 잘 만들어진 카피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쩌면 그리도 진짜와 똑같은지? 캐나다에서 50 불 정도만 주면 2캐럿짜리 정도 카피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 수 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비슷하다. 아니 진짜보다 더 잘 만들었다. 그러나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현미경으로 보면 볼수록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 현미경으로 보면 다이아몬드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본 일이 있다. 역시 감탄과 감동이다. 


 본인이 진짜를 끼고 있다는 것, 혹은 가짜를 끼고 있다는 것. 그 반지를 끼고 있는 본인만이 안다는 사실, 남이 보아서는 알 수도 없고, 알아서 무엇 하리.


 명품들이라 이름 붙인 것들이 참 많다. 가방이나 보석뿐만이 아니라 시계, 옷, 신발, 가구 등등.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여자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솔직히 말해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도 명품 좋아한다,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토론토에서 운전하여 뉴욕에 들어가기 1시간 전쯤에 우드베리(Woodberry)라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세계적인 명품 아울렛 쎈터이다. 없는 품목도 있지만, 거의 다 있어서 명품들을 거의 반값에 구입할 수 있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없어서 30분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고 헤매는 것은 보통, 평일도 주차장 찾기가 어렵다. 뉴욕을 여행하는 여행사의 코스에 우드베리가 거의 다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품 명소이기 때문이리라. 


 30여 년 전에 토론토에서 있었던 얘기다. 70이 넘어 보이고 촌스럽게 생긴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 할머니는 버버리 가방이 하도 들고 싶어서 토론토의 블루어에 있는 롯데백화점 (지금은 없어졌지만)에 수 없이 들락거리며, 그 가방을 만져보다가 끝내는 400불인가 (그 당시) 주고 샀다고 한다. 그 가방을 들고 지하철과 버스 타고 다니려니 누가 탐낼까 봐서, 가방을 사면 큰 헝겊주머니가 들어 있는데, 그 주머니에 버버리 가방을 넣어서 안고 다녔다고 한다.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버버리 가방을 든 자기 마음은 행복하다는 본능이다. 


 카피면 어떻고 명품이면 어떻고 무슨 가방이면 어떤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얼 들면 어떤가? 자기 마음이 문제다. 모든 것이 마음 장난이다. 천국과 지옥이 저 우주 어느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다고 성경이나 불경은 말하지 않는가.


 그 때 그 때 형편에 따라서 마음 가는 대로 들면 되지, 명품가방은 국경을 넘나들 때나, 공항 세관 통관에서 걸리면 영수증을 보여줘야 되고, 시간 걸리며 애를 먹는다. 그래서 명품은 해외로 나갈 때는 대개 들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명품이 그리 대수인가? 우리 인생에 명품보다 더 귀중한 것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 딸이 웃으면서 하는 말, “신경질 나서 남편에게 한번 해 본거야, 엄마 신경 쓰지 마요. 비닐봉지도 감사하며 드는데. ” 했단다.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조오지 스미스 패턴 장군은 독일의 벌지 전투에서 아군 8천여 명이 적군에 둘러싸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보라 악천후에도 가려고 할 때 다른 장군들이 말리면서 “액팅하는 것 아닙니까?” 할 때 패턴장군은 “액팅하는 것 아니다. 남이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남이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도 명품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불성설일까? 만나면 만날수록 더 정이 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의지가 되며, 보면 볼수록 더 예쁘고 질리지 않는, 참되고 아름답고 순수한 나만이 아는 명품 사람. 


“그런 사람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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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모리셔쓰(Mauritius) 섬을 아시나요?

 

 
 모리셔쓰 섬을 가보지는 않았다. 가본다 한들 무얼 그리 많이 알고 오겠나. 하늘과 바람, 야자수와 햇볕, 그리고 모래와 즐기다 오면 그 뿐. 그러나 그 섬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다. 거기에서 온 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임으로. 


 죤과 실비아는 늘 모리셔쓰 섬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모리셔쓰! 모리셔쓰!  섬은 아름답다. 더욱이 열대 가까운 쪽의 섬은, 늘 초록의 식물들과 선명한 색의 꽃들은 아름답고, 뜨거운 바람에 야자수들이 쉼 없이 춤을 추고, 짙푸른 하늘엔 구름도 새하얗다, 


죤은 그리운 모리셔쓰를 실눈으로 그려본다. 떠나온 고국이 안 그리운 사람도 있나? 고향처럼 아름다운 곳이 또 어디 있나? 가난하게 살던 고향도 다 그립다. 그곳은 늘 엄마 품 같은 그리운 추억이 있고, 미래를 상상하며 꿈꾸던 시절이 있던 곳. 죤은 모리셔쓰가 너무 너무 아름다운 섬이라며 입에 침이 마른다. 실비아가 나와 함께 모리셔쓰로 여행 가자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리셔쓰 섬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인도양 남서부에 있는 인구 백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섬, 몇 년 전에 말레이시아 항공기 실종사고가 난 그 인도양에 있는 섬, 예전에 한국의 원양어선이 출항을 하면 첫 번째로 모리셔쓰 섬에 와서 쉬었다 간다는 섬. 사탕수수 재배가 주요 산업이고, 관광업으로 밥 먹고 사는 섬,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이 만나는 곳 등이다.


 모리셔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두 군데가 있다 한다. 아프라바시 카트(Apravasi Ghat)는 19세기에 인도에서 건너온 당시 노예노동계약이 이루어져 그들이 머물던 창고 형 건물이고, 르모론은 그곳에서 도망친 노예들이 숨어 살던 곳으로 슬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란다. 


 공화국인 이 섬은 불란서 영으로 있다가 1968년에 독립하여 2018년 올해로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캐나다 토론토에도 모리셔쓰 섬에서 온 이민자들이 만여 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아주 소수민족이다. 


조상이 주로 인도계통의 사람들이 제일 많고 아프리카계 유럽계 혼혈 등이 섞여있는데, 요즈음은 중국계가 많으며 그들 중 일부는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불란서 영이었다고는 해도 백인들은 보기가 드물었다. 


 그들은 독립기념일에 축제를 하는데, 남녀노소 물론 다들 먹고 마시고 춤춘다. 일어서면 춤추고 앉으면 먹는다며 자기들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늘 먹는 것을 생각한다며 “우리는 만나면 먹기만 해, 먹고 또 먹어” 배부른 것이 너무 좋다고, 캐나다가 ‘마리 봉’(very good) 항상 감사가 넘친다고 한다. 


 병원에서 돈도 안 받고 아픈 곳을 고쳐주며 수술도 해주고, 65세가 넘으면 연금을 죽을 때까지 줘, 캐나다 같은 나라에 와서 산다는 것이 꿈같다며 마리 봉! 캐나다가 천국이라고 한다. 


 이번 이 행사에 세 번째로 참석을 해 보았는데, 식사가 나오는 걸 보면 애피타이저로 한국의 다식 만하게 나오는 것이 한국의 빈대떡 같은 맛으로 먹을 만했다. 인도음식에 중국음식이 섞여있는 맛이었다. 자기들이 모리셔쓰 섬에서 가난하게 살 때 먹었던 음식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 다음은 기름에 튀긴 작은 만두처럼 생긴 것이 나오는데, 속에 닭고기를 넣은 것이었다. 넓적하게 부친 밀 쟁반 같은 것과 후 불면 날아갈 듯 한 쌀로 만든 밥이 모리셔쓰에서 먹던 음식들이라며 자랑을 한다. 그렇겠지, 자기들이 배고플 때 맛있게 먹던 음식이었으니까, 우리들도 만나면 한국음식 판이 아닌가?  


가난하게 살았어도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그들, 춤추는 문화 속에서 그들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나면 먹고 춤만 춰, 춤추는 게 좋아” 다양한 춤들을 보여 주었고, 머리에는 작은 레이를 두르고 360도가 넘는 치마를 이리저리 돌리며 추는 춤은 하와이의 훌라춤을 연상하게 했으며, 우리들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었다.


그들은 모국어가 주로 불어였기 때문에 악센트는 달라도 영어에 무리가 없는 것을 보았다. 지난번 인도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캐나다에 와서 사는 것을 그토록 감사하던데, 이 사람들도 이토록 감사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캐나다에 와서 살고 있음을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 다른 민족들과 어울릴 때 캐나다에 대한 감사의 말을 나도 잊지 말아야겠다. 캐나다에 와서 산다는 것을 역시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임으로. 


모리셔쓰 사람들의 외침이 귀에 울린다. “캐나다 마리 봉! 캐나다 마리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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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프랑스 여인들

 
 
 나는 속으로 “오 마이 갓!”이 나왔다. 예상치 못했던 프랑스 여자들 7-8명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프랑스어를 가리키는 작은 학교다. 오늘 저녁에 프랑스 치즈(cheese)들을 시식해 본다는 작은 파티인데,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 하면, 이 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죤이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죤은 댄스스쿨에서 (물론 남편과 함께) 만났는데 중국계로서 모리셔쓰(Mauritius) 섬에서 온 사람이다. 모리셔쓰 섬은 남아프리카 옆 인도양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지금은 독립했지만, 과거 프랑스 영으로 있어서 그곳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불어를 쓰고 있다고 한다. 죤은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잘 한다. 


 내가 아는 프랑스는, 몇 년 전 사르코지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이혼하고 재혼했던 일, 루이비통(Louis Vuitton) 핸드백, 샤넬,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루브르 박물관의 눈썹 없는 모나리자 그림, 불란서 꼬냑, 에펠탑,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몽마르뜨 언덕, 알랭드롱의 우수 깊은 눈동자가 떠오르는 정도.


 프랑스 남부에서 만든 치즈들을 시식해보는 파티인데, 두 사람의 사회자가 나와 한 사람이 불어로 말하면 한 사람은 영어로 통역해 주는 식으로, 4가지 종류의 치즈를 먹어 보았는데, 나는 그 맛이 그 맛인 것 같았다. 


치즈 맛이 치즈 맛이지 뭐가 크게 다른가? 그러나 그들은 그 맛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치즈는 우유를 발효 성숙하여 농축한 것으로 칼슘 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유산균이 풍부하며 치즈 없는 식사는 프랑스 사람들의 음식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함.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김치가 빠질 수 없듯이, 프랑스에서 나오는 치즈의 종류는 각 가정에서 만드는 것 말고도 500여 종류나 된다고 했다. 젖소, 양, 염소 등에서 나오는 젖으로 만드는데, 짐승이 다 다르니 맛이 다를 수밖에, 와인의 나라 프랑스, 역시 치즈도 강국이라는 뜻이겠다. 


 프랑스 남쪽이라 하면 이탈리아의 북서쪽이라 할 수 있는데. 그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눈부신 태양 아래 끝도 없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치즈는 와인과 포도와 함께 먹는다고 했다. 음식 궁합이 잘 맞는가 보다. 치즈는 빵과 크래커도 곁들여 마른 과일(Dry mango, raisin등)과 함께 먹어보니 더 부드럽고 좋았다. 


우리가 고구마를 먹을 때 김치와 함께 먹듯, 프랑스의 먹거리로는 흔하고 흔한 게 치즈라고 한다. 대야만한 큰 덩어리 치즈도 어떤 것은 아주 싸다고 한다. 프랑스 그림에서 보면 농가 그림들이 많고 농산물 축산물 생산이 유럽에서도 프랑스에서 많이 나온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집집마다 냉장고를 열면 온통 가지각색 치즈라고 한다. 우리가 밥하고 다양한 김치를 먹듯.


 프랑스의 전통 여자들 얼굴을 보면, 양미간 바로 아래 양 눈의 간격이 좁고 눈이 코를 중심으로 안쪽으로 ‘옴팡’ 들어가고, 코가 위에서부터 굵고 크다는 것, 프랑스의 명화 마네, 모네의 그림에서 본 여자들의 바로 그 얼굴들, 여자 코가 저렇게 크다니, 유럽은 얼굴들이 거의 비슷하지만, 프랑스 전통 여자들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모두가 그 얼굴이 그 얼굴 신기했다.


 그들도 동양여자인 나를 보며 코리언 여자라니 얼굴은 넓적하고, 코는 납작하고 눈은 작고 저러 하구나 속으로 웃겠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엄마들도 모여 앉으면 모두가 비슷비슷 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토록 일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내 몸의 변화를 순하게 받아들인다는 프랑스 여자들. 루이비통 가방도 들지 않았고, 코티분 향기도 나지 않았다. 


 뚱뚱한 사람이 많지 않은 프랑스 여자들, 그녀들의 손이 뼈가 굵고 마디도 굵은 것을 보니 역시 일을 많이 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들의 문화를 알면 알수록 깊이 빠져 들어가는 매력을 숨길 수가 없는 것은, 예술과 패션,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이혼과 재혼을 넘어 숨은 검소와 절약이 기본인 그들이기에. 

 

 

 

종이여 울려라
우리네 사랑은 다시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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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역지사지

 
 
 가끔 만나는 50대 초반의 미쎄쓰 리가 있다. 이런 저런 말이 오가다가 미쎄쓰 리가 하는 말, “제가 * * 교회를 한 10여 년째 다니고 있는데, 우리 교회 S 목사님은 참 훌륭하세요.” 


 “아, 그래요? 훌륭한 목사님이 계신 교회에 나가니 참 좋으시겠네요. 그 훌륭한 목사님의 훌륭한 점을 한 가지만이라도 말해 줄 수 있어요? 듣고 싶네요.”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나가 봉사한다는 미쎄쓰 리는 늘 긍정적이고 부지런하고 밝은 모습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여자다. 


 “네, 지난번에는 목사님께서 저와 다른 권사님 한 분에게 점심 대접을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한국식당엘 갔어요. 식사 주문하기 전에 목사님께서 두 그릇만 시켜서 셋이 먹자고 하셨어요. 돈을 아끼자고요. 그래서 2인분만 시켜서 먹었지요. 얼마나 알뜰하신지? 참 훌륭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래요? 그 중에 누가 식사를 못하실 상황이었던가요? 두 그릇만 시켜서 셋이 나누어 드시게요?” 


“아니요, 그건 아니예요” 


“그럼 모두 식사를 하실 수 있는데, 2 인분만 시키셨어요? 돈을 절약 하시려고요?”


“네” 


“그 일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미쎄쓰 리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안 그래요?” 한다. 


 내가 고개를 가로 저으니 


“아니 왜요?” 


“목사님께서 어떤 다른 뜻이 있으신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훌륭한가? 안 훌륭한가? 나는 아니라는 생각인데...”


“어떤 생각이신데요?” 그녀는 토끼눈이 된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이건 내 생각인데 자 봅시다. 역지사지(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로 볼 때, 나는 목사님도 아니고, 두 권사님도 아니고, 식당 주인도 아니고, 식당 웨이츄레스도 아닙니다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금 듣고 느낀 대로를 말해 볼게요. 


옳고 그름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예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이예요. 어쨌든 내 생각을 말해 볼 테니 들어보고 난 후, 미쎄쓰 리의 또 다른 생각도 들어 봅시다. 


내가 식당 주인입장이라면 성질 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식당도 잘 안 되는데, 셋이 와서 두 그릇만 시키는 일,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요. 몸이 아프다던가? 방금 전에 식사를 했다던가? 한 분이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는 어떤 상황 등 그럴 땐 이만저만 부득이한 일로 2인분만 시켜야 되겠습니다, 하면서 일하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라고 봅니다. 


또 웨이츄레스를 생각하면, 셋이 식사를 해야 하니 수저 좀 하나 더 갖다 주시고요 젓가락도요, 그릇 좀 하나 더 주시고요, 물도 한 컵 더 주세요. 김치하고 땅콩볶음 다른 반찬 좀 더 주세요. 내프킨 좀 더 주세요. 이거 맛있네요, 웨이츄레스에게 일은 더 많이 시키게 되겠지요? 


역시 미쎄스 리는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웨이츄레스는 사람 아닙니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 웨이츄레스는 기분 좋겠습니까? 뭐? 훈련시키느냐고요....  


그리고 2 인분 가지고 감사하다며 기도하고 셋이 나누어 먹으면 두 분의 권사님들 기분이 어떨까요? 아이고 알뜰하신 우리 목사님 1인분 값은 아프리카 선교에 쓰시고, 2인분 가지고 우리 셋이 나누어 먹으니 덕분에 다이어트도 하고 감사가 넘치네요. 음식 맛이 너무 좋아 수저를 못 놓겠네요. 그런 기분이들까요? 글쎄요, 내가 두 분의 권사님 중의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시간이 참으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제가 그 목사님이라면 기분이 어떨까요? 식당 주인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까? 알겠지, 토론토의 한인사회가 뻔하니까, 식당 주인 눈치 보느라 입장 곤란한 중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만일에 그 목사님이 그런 눈치 볼 분이 아니라면 그 목사님은 양심에 뭐 맞은 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다면 그 목사님이 팁은 넉넉히 주셨을까요? 


내가 목사님이라면,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으니 두 권사님들 식사 대접은 하고 싶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인과 상의하여 웬만하면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좀 초라하고 변변치 못하더라도 밥하고 김치찌개 끓여서 김과 멸치볶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고, 권사님! 권사님! 하면서 마음 놓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봉사도 많이들 하신다면서 칭찬도 해드리고, 웃으면서 배부르게 잡숫게 하겠네요. 라면이면 어때요, 만남이 더 중요하고 즐거운 일일 테니까요. 


식당 주인은 저 목사님이 있는 교회를 눈여겨 볼 것이고, 웨이츄레스 역시 저 목사님 참 짜다 짜, 생각해 볼 것이고, 내가 권사라도 깊이 다시 생각해 볼 일 아니에요?“ 


 어찌하여 훌륭한 목사님 이란 말인가? 미쎄쓰 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맞는 말씀이네요. 그러나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했다. 


 우리 서로 입장을 바꾸어 가면서 생각해 봅시다. 훌륭한 목사님인지? 안 훌륭한 목사님인지? 그 문제 이전에, 내가 식당 주인 이라면? 내가 웨이츄레스라면? 웨이츄레스가 내 딸이라면? 내가 권사님이라면? 내가 목사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은 순간순간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어떤 일일지라도 항상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럴 때 이해도 가고, 나 같으면 보다 나은 길,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하는 분별을 하게 된다. 


남의 경험에서 인생의 리얼한 또 한 수를 배운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학벌이나 지위, 지성이나 돈 등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것, 배려는 곧 어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겠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서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면서,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준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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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추억으로 사는 남자


 
 내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만난 것은 꼭 5년 전이다. 그때 그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자기의 조국인 그리스 마세도니아의 Old pop song을 가수처럼 불렀을 때 화려함의 극치를 보았다. 나는 마세도니아의 노래를 잘 모르지만 분명 그 노래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부르는 노래임이 분명했다. 150여명의 마세도니안들의 박수 소리가 오랫동안 천장이 들먹거릴 정도였으므로. 그녀는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늘 친구를 걱정하는 남편과 함께 어제 그 집에 갔었다, 참으로 몇 년 만에. 그녀는 치매 중증으로 바보가 되어 웃고 있었고, 가까이 가니 그녀한테서는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가 심하게 났다.


 이제야 들은 이야기지만, 5년 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그녀는 치매 초기였다고 한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치매는 그녀 엘리자베스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엘리자베스의 남편 빌은 아내를 만난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으로 사랑이 극진하다 한다. 몸과 마음과 정신과 혼까지도... 아내가 저렇게 된 지금은 더 사랑한다 하니 사랑의 위대함을 여기서 본다.


 빌은 아내 말만 하면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사랑 엘리자베스! 내 사랑 엘리자베스! 하는 남편의 온 가슴은 엘리자베스로 꽉 차 있다. 착한 치매에 걸려 웃기만 하는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을 잃었고, 눈 주변은 시커멓게 죽음의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건만, 하루 24시간 아내를 돌보는 남편은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민첩하게 돌아간다. 빌의 지극 정성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


 나의 남편이 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나가자고 하니 빌은 좋다고 하며, 우선 아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리고 간다. 볼일을 다 보게 한 후, 의자에 앉혀 놓고 신을 신겨준다. 그런 다음 목도리를 둘러주고, 잠바를 입히는데, 소매 속에서 손을 잡아 끄집어낸다, 양손 다. 


잠바 앞의 지퍼를 올려주고 자기가 나갈 준비를 재빨리 한 다음, 아내의 손을 잡고 모시듯이 조심스럽게 나간다. 우리 차의 뒷좌석에 앉게 하니 빌은 엘리자베스의 다리 한 쪽을 들어 차에 먼저 올린다. 그 다음 엉덩이를 올리고 다른 쪽 다리를 들어 차에 올린다. 다시 엉덩이를 자리 잡아 잘 앉힌 다음 아내의 두 손을 앞에 모으게 하고 나서야 차 문을 닫는다. 레스토랑에 앉아 아내의 먹는 일도 일일이 돌보며 2살배기 애기 다루듯 한다.


 밤하늘에 은하수가 찬란히 빛나고 영롱한 별빛들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도 여명은 밝아오고 아침은 오는 것, 젊음이 영원할 수 없고 늙음이 와도 혼자 오지 못하고 치매와 함께 오다니, 나이 먹는 거 서러울 건 없다. 나만 먹는 게 아니므로.


 그들은 둘이 동갑 현재 70세, 치안 판사직 정년을 7년 앞두고 아내를 본격적으로 보살피기 위하여 2년 전 조기 은퇴했다. 아내를 돌보며 젊음을 불태웠던 아름다운 날들의 추억 속에 산다는 빌.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70대를 빌은 아내 바라지로 보내고 있다. 오래된 바이올린이 소리가 더 아름답다더니... 빌은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황혼 길을 걷는다.


 치매가 나아진다는 것 다 먹이고, 치료에 좋다는 것은 다 해주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별처럼 아름다운 빌. 목소리도 곱게 노래 부르던 새빨간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엘리자베스가 눈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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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피붙이 살붙이


 
 나이 드신 어느 분으로부터 들은 귀감이 되는 이야기다.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일가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중에 어느 부인이 남편을 일찍 여의고, 가난 속에서 6남매를 힘들게 키웠는데, 어느 아들이 서울로 가서 고생하면서도 공부를 잘하여 후에 의사가 되었다.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을 사고 새로 나온 비싼 세간들도 들여 놓고,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일가친척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큰 보자기와 이불 호청 등을 가져다가 TV를 덮고, 냉장고와 선풍기 등을 덮어서 한쪽 방으로 옮겨다 놓고 방문을 잠그라고 하셨다. 


 아들은 “어머니, 왜 그것들을 보자기로 덮고 치우라고 하세요? 친척들 오면 자랑도 해야지요,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을 적에 어느 친척도 도와주지 않았잖아요?” 그랬다.


 어머니는 “웬 말이냐? 아들아, 이리 앉거라, 내 말을 잘 들어보아라. 우리에게 아버지가 안 계시고, 남편이 없는 나를 그런 일가친척들이 있었기에 남들이 우리를 깔보지 않았고,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우리를 보면 누구네 친척 붙이라고, 누구네 피붙이요 살붙이라고, 누구네 뭐뭐 된다고 건드리지 않았다.


 일가친척들이 있어서 평생 우리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고, 방패 역할을 해준 것이 우리를 살게 해준 일이다. 얼마나 고맙고 귀한 일이냐, 그 뿐이냐? 남보다 우리에게 먼저 일거리를 주어서 먹고 살게 했다. 그래서 우리가족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 왔단다.


 이제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고 이런 것들을 자랑하면, 그들은 우리를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을 테고, 그분들의 마음이 편치 못할 것 같구나, 그분들이 마음 편하게 왔다가 가실 수 있도록 이런 것은 보이지 말자, 보이더라도 나중에 보이자.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융숭하게 대접하자”고 하셨단다.


 아들은 깊고도 지혜로운 어머니의 마음과 그 말씀에 감동이 되어 순종함으로 겸손을 배우게 되었고, 자랑의 끝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인생의 귀중함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한국의 1950-60 년대 즈음 6.25 전쟁 후로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얼마나 낙후된 나라였나? 그때의 어머니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많은 여자들은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농사일 부엌일 시키다가 시집을 일찍 보냈으니 아이들은 왜 그리도 많이 낳았나? 피임 방법이 없었으므로 계속 낳을 수밖에, 먹을 것이 넉넉했나, 입을 것이 넉넉했나. 그 시대의 의식주란 말이 아니었다고 본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 힘든 고생 중에서도 인간의 본분을 잃지 않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며 살아오신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남편도 없이 아버지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 가족들의 이웃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가족들을 해치고 싶어도 그들의 곁에는 친척들이 있었고, 분명히 그 친척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척들이 있었기에 감히 어떻게 하지 않았다고 본다. 


 대개는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았겠나, 심리학을 전공해서 알았겠나, 어머니들은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셨고 지혜로웠고 억척스러우셨다. 밭을 매면서도 보리방아를 찧으면서도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도 인간의 도리, 인간 본연의 마음을 되짚어 보며,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도 해보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 보셨겠나.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에게는 삶의 지표가 되어 주었던 어머니가 있었고, 그의 곁에서 끊임없이 응원해주고 희생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강철이 어머니보다 더 강하겠는가? 


 무엇보다도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 근래에 유럽 난민 사태들을 매일 뉴스로 접하면서 자기가 살던 나라를 떠나 맨 몸으로 목숨 걸고 탈출하는 저 수십만 명의 난민들, 자기의 나라가 엉망이면 백성들은 어찌되겠나?


 비참하고 참혹했던 6.25 전쟁을 겪은 한국을 되돌아보면서, 다시는 우리의 조국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다행히 이런 어머니들이 계셨기에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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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8
소확행(小確幸)

 


 
 요즈음 소확행(小確幸)이란 말이 뜨고 있다. 소확행이란? (소)소한 즉, 작은 일에도 (확)실히 (행)복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이를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가 담긴 용어를 씀으로써 인터넷에 행복 바이러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인터넷 뿐만 아니라 이미 선진국에선 소확행이 널리 퍼져 세계적인 삶의 방식으로 가고 있다니 한편으로는 세상이 참 밝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좋은 뉴스다. 


 우리들은 행복을 어느 큰 것에 목적을 두고 추구하며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큰 것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작은 것에의 감사, 실은 그것들도 확실한 작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역시 엔돌핀이 나오는 일이 아니겠나.


한국에는 3포시대가 오래 전에 나오더니 5포 시대, 7포 시대라는 말이 나왔다. 7가지를 포기하는 시대라 한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등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경기침체와 함께 젊은이들의 앞날이 불확실성과 혼란에 빠져 비관한 끝에 나온 말이라고 본다. 


젊은이들뿐인가, 오래 살게 된 세상이 되면서 노인들의 노후 대책, 남녀노소 모든 사람에겐 불안과 혼돈, 위기, 단절, 비합리적이 것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포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현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져 가고 있으니 예를 들면, 따끈한 커피한잔에 크로쌍을 먹으며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메모의 시간이라든가, 초록의 채소를 씻으며 캐나다의 긴긴 겨울 속에서도 여름을 풍성히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이 추운 겨울에 뜨거운 물을 펑펑 쓴다는 것도 감사하고, 추억의 자장면을 그것도 캐나다 토론토 땅에서 다시 먹어 볼 때, 옛날에 먹던 그 자장면 냄새와 씹히는 면발의 쫀듯함에서 느끼는 감회라든가, 요즈음 세상엔 카톡이 있어서 생각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좋은 동영상을 보내와 그것을 열어보는 순간 엔돌핀이 팍! 하고 터지는 일.


 꼭 필요했던 물건이 200불 이었는데 20불에 살 때, 아는 한국 분들 일하는 곳에 신선한 팀호튼 커피나 맥도널드 커피와 호두과자를 사다 주는 일, 내가 하고 싶은 글을 쓴다든지, 색소폰을 분다든지, 친구와 수다를 떤다든지, 좋아하는 노래나 즐기는 음악들을 듣는 시간, 쓰레기 통 옆에 넘치는 쓰레기들을 주워서 정리해주는 일 등등, 행복을 느끼는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순간순간 얼마나 많은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들을 이어가는 삶의 나이테를 만드는 일, 그 또한 얼마나 보람 있고 풍요로운가. 


 큰 기쁨도 결국엔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소소한 기쁨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의미이다. 큰 행복을 바라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소확행의 이어짐 속에서 미래의 큰 행복에도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삶이 아닐까.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소소하게 느끼는 작은 것들에의 감사함, 그 자체가 작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건 분명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극히 현실적인 작은 행복이다. 작은 것에서 느끼는 행복, 행복을 바꾸어 말하면 생명이 아닌가.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매순간 소확행은 있을 수 있다. 작은 행복을 쉽게 만질 수 있다면 분명 큰 행복도 만질 수 있다고 본다. 

 

(소확행! : 발음이 입에서 부드럽지 못하다. 소확행이란 말을 해볼 때 떠오르는 말이 있다. 한국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확실’이란 말의 발음을 못하여 ‘학실’이라고 하던 것이 생각나서다. 한국 사람이 왜 ‘확실’하다는 발음을 못해서 학실히, 학실하게 라고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간다. 지역적인 사투리 때문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학실이가 뭔가, 학실이란 말이 대통령을 한 그 분의 대명사가 되었다. 학실히, 학실하다는 그 발음을 해볼 때마다 웃음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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