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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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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조연

 

인도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51세, 이름은 자스벌이다. 그녀의 남편과 내 남편이 친구이기 때문에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나다 보니 우리도 가까워졌다. 그녀의 남편은 터번을 썼던 정통 인도사람으로 눈동자의 아래에 흰자가 많이 보여, 볼 때마다 코브라를 연상케 해서 처음에는 이질감이 많았으나 차츰 말하는 것을 보니 참 배울 점이 많았다. 내가 짧은 영어지만 그런대로 소통이 되었다.

 

 

 


늘 인도 전통 옷을 입고 치렁치렁한 머리의 상냥한 자스벌은 나보다 키는 약간 작지만, 큰 눈에 얼굴이 예쁘다. 늘 마음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어떤 말이 오고 가든 늘 긍정적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와는 음식이나 옷이며 머리모양 등 풍습도 크게 다르고 냄새부터가 다르지만, 칭찬해 주면 웃으면서 좋아하며 감사하다고 한다. 좋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알려주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뭐라도 다 묻는다. 알려주면 아 그러냐고 자기도 꼭 해봐야겠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예쁘다.


예를 들면, 겨울 스카프를 하나 선물했는데, 웃으면서 좋아라 하고 목에 걸쳐도 보고, 머리에 써 보기도 하고 어깨에 휘이 둘러도 보고 땡큐! 땡큐! 한다. 우리보다도 경제적으로 더 잘 사는 것 같은데 작은 선물임에도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내가 안부전화 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 우리 집은 24시간 문이 열려 있으니, 어디를 오갈 때 언제든 들려서 밥 먹고 가라고 한다. 나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러는 것 같다. 참 좋은 성격이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는 만나면 화두가 단연 건강이야기다. 자기들은 소고기, 돼지고기는 절대로 안 먹는다는 것이다. 닭고기와 양고기, 계란, 생선은 먹으며, 각종 채소, 특히 향기 나는 채소들, 과일 종류는 다 먹고, 치즈 종류와 가지각색의 잡곡종류, 너트 종류 등을 고루 챙겨먹는다고 한다. 


인도계통 사람들이 머리 좋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향기가 특이한 코리안도(고수)를 자스벌이 좋아한다는데, 나도 그 특이한 향의 코리안더를 좋아한다. 카레 음식을 해놓은 걸 보면 한국식 카레 음식은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거부감은 없어서 조금 먹는데, 코리안더까지 썰어서 얹어 준다. 내가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밥을 한다는데 넓적한 냄비에 흰쌀을 넣고 물을 많이 넣어 뚜껑도 안 닫고 보글보글 삶더니, 쌀이 익었는지 불을 끄고 쇠 체에 받쳐 밥물을 싱크대에 죽 딸아 버린다. 다시 물로 한번 밥을 쓱 씻어 내린다. 끈적끈적한 스타치(녹말= 전분)를 다 뺀다는 것이다. 스타치가 설탕을 만들기 때문에 자기들은 안 먹는다고 한다. 


밥이 풀풀 나른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밥이 쫀득쫀득 차져야 맛있다고 일부러 찹쌀도 조금씩 섞어서 먹는데, 어찌 보면 그들이 혈당 문제에 선진화한 것 같다. 생강을 많이 먹어 몸이 더워서 그런지 풍습이 그런지, 그들은 집안에서 양말을 안 신고 산다.


두 번째는 자녀교육이다.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중점을 둔다고 한다. 우리말로 치면 먼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하면 애들이 집에 있을 경우, 다 나와서 인사를 한다. 무슨 차를 원하시느냐? 하며 옆에 와서 식사 수중까지도 거든다. 큰 아들은 이번 공부 끝나면 치과를 개업한다고 한다. 딸은 변호사 공부를 하고 있다 하고, 막내는 비즈니스를 전공한다 한다.


세 번째는 노후대책이다. 돈과 운동은 필수인데, 어떻게 노후를 보낼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 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얼마나 건전한 생각인가? 거기까지는 동감인데 구체적인 실천이 관건이다.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과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로 이웃에 조카네가 살고, 동생네들도 가까이 살고... 보아하니 친인척들과도 지역적으로나 마음으로나 가까이들 살고 있단다. 


이혼한다는 어느 조카를 불러서 타이르는 걸 보았다. 인도에서 살고 있었다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아이들 교육이고 뭐고 할 수가 있었겠느냐고, 우리가 캐나다에 와서 이렇게 복되게 잘 살고 있는데, 무엇이 불만이냐? 감사가 넘치지 않느냐? 꼭 이혼을 하겠다면 해라,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분명 네가 치러야 한다는 걸 명심하라며, 꼭 안아주고 등을 다독이며 가르치는걸 보았다.


또 다른 친척들이 집은 사고 싶고 돈이 턱 없이 모자랄 때, 세 집이나 네 집이 모여 똑같이 돈을 내어 다운페이하고 집을 사서 여러 가정이 함께 산단다. 한 10년이고 살다 보면 집값도 오르고 각자 돈도 모았을 테고, 팔아서 똑같이 나눈 다음 따로 집들을 장만한단다. 나도 실제로 그런 인도인들을 본 적이 있다. 우리 한민족하고는 다른 그들의 민족성이 좋아 보였다.


자스벌 남편은 인도 토종의 큰 눈이 꿈벅 꿈벅 대지만, 늘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고 무엇인가 상대방을 도와주려는 눈빛이다. 상대방은 올려주고 자기는 뒤에서 밀어주고 협조해 주는 일이 행복하다고 한다.


영화배우로 말하면, ‘주연은 당신이 하게! 나는 조연이야’ 조연이 좋다고 한다. 주연은 스타로 떴다가 내려와야 하지만, 조연은 영원한 조연이라고 하며 웃는다. 100%의 행복보다도 80%, 혹은90%에 늘 만족하다고 한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가르침 보왕삼매론을 읽고 실천하는 사람인가? 주연 아니면 안 한다는 한국 사람의 정서와는 판이하다. 토론토의 어느 한인 단체들을 보더라도 회장을 해보겠다고 삶의 모든 것을 걸지 않는가? 오호통재라!


자스벌 남편은 삶에 부족한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100%를 원하지 않는단다. 달도 차면 기울어야 하고,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얼마나 지혜로운 말인가. 인도 사람한테 인생의 정수! 또 한 수를 배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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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각 방(하)

 

(지난 호에 이어)
 나의 친정 부모님은 이불 하나, 요 하나를 펴놓고, 두 분이 한 이불 속에서 주무시는 걸 평생 보아왔다. 혹 감기가 들어서 옮길까 봐 방을 옮겨 주무신다든지, 한 분이 편찮다든지 싸웠다든지 불가피한 어떤 이유로 각 방을 쓰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어도, 평생 그렇게 사셨다.


 2년 전에 92 세로 돌아가신 엄마가 전에 “각 방 쓰면 부부 간에 정이 멀어져서 절대로 안 되는데”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처녀시절, 집에서 엄마가 안 보여서 아버지 방 앞에 가서, 엄마! 하고 부르면서 방문을 열면 아버지가 이불 속에서 젊잖은 음성으로 “왜 그러니?” “엄마 어디 가셨어요?” 하면 “엄마는 왜?” 하며 보이지 않던 엄마가 이불 속에서 고개만 쏘옥 내민다.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가 엄마를 자기 품에 품고 잤다는 것이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나는 왜 그리 눈치가 없었을까? 그것도 환갑이 가까워서야 깨닫다니 나도 참 둔한 여자다. 


아버지가 79세에 돌아가시니 누가 나를 품어 주겠냐며 그토록 서럽게 울던 엄마, 엄마는 저 세상에서도 아버지를 꼭 다시 만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두 분 다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그곳에서도 두 분 분명히 만나 엄마는 아버지 품에서 주무시겠지, 엄마는 머리통도 커서 무거울 텐데 우리 아버지 팔뚝은 어떻게 되나? 나는 늘 아버지 팔뚝이 걱정되었다. 얼마나 팔뚝이 저리셨을까, 기우일까? 아버지의 팔뚝이 저리다든지 아프시다는 말을 평생 들은 적은 없다. 


 전에 누가 이혼을 한다 하니 아버지는 “이혼이라니 제 품에 들어온 여자를 왜 뺏기고 사느냐, 내 여자는 내가 지켜야지” 이런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숨 끊어지는 순간까지 마누라를 자기 품속에 꼭 틀켜쥐고, 경제권도 틀켜쥐고 있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곳에 유언장이 있다고, 그대로 하라고 하시며 숨을 거두셨단다. 나는 캐나다에 있어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주변에서 각방 각방 하는데, 삶이 경제적으로 넉넉해져서 일까? 우리 엄마 아버지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각방 쓰는 것이 유행인가? 그 말이 진실인가? 각방 쓰는 것이 미덕인가? 각방 쓴다고 말해야 우아하고 고상한가? 우리 한민족은 각방 쓰는 민족인가? 그러면 결혼은 왜 했나? 종족 번식을 위해서?


 결혼해 사는 조카 녀석한테 물어 보았다. “너희들은 한 침대에서 자니? 각방에서 자니?”


“각방 쓸 방도 없어요. 애기가 방 하나 차지하고 따로 잘 방이 어디 있어요?”


그런 건 쓸데없이 왜 묻느냐는 듯 전화 빨리 끊으라는 것이다. 아 하, 방이 하나여야 되는 구만. 


 남편의 친구 현직 판사 인도사람이 있는데 어제 그 집에 초대되어 갔다. 그 친구는 캐나다에 와서 사는 것이 젊었을 때 가졌던 꿈보다 훨씬 잘 살고 있어서 늘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자체가 불행이라며, 각방이 웬 말이냐고 한다. 


침대에서 뛰쳐나가면 부부간은 끝장이라고 인도사람 특유의 눈을 부릅뜨며 열변을 토한다. 인도 계통의 사람이라면 한국인들과는 문화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상당한 이질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심리란 대동소이 어느 나라 사람일지라도 거기서 거기다. 얼마 전에 보지 못했던 짧은 구레나룻에 힙스터식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그는 입꼬리 양쪽 위의 수염 끝을 수시로 양손 엄지와 검지로 말아 올리며 길들이는 모습이 여성들이 앞머리에 신경 쓰는 것보다 더했다. 부부간이란 이불 속에서 시작된 역사가 아니냐고 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아끼는 후배 하나가 평소에도 내 말을 잘 들었다. 60세 전에 아들 딸 다 결혼시켜 내보내면 인생 반은 성공이라고 수십 번 말했더니. 그렇게 했다. 얼마나 예쁜지? 


“그래 홀가분하지?” 


“너무 좋아요, 선배님 덕분에” 


“요즈음은 어찌 지내나?” 


“신혼부부처럼 살아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맨날 싸우고 이혼 직전까지 갔던 그 부부가 지금은 애들 결혼시켜 다 내보내고 신혼부부처럼 살고 있단다. 


“나와라, 맛있는 것 사줄게” 예뻐서 업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100세를 사는 세상이니 노후대책으로 써도 써도 안 줄어지는 돈 준비 단단히 해놔, 캐나다 정부에서 주는 월페어 탈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건강 챙겨, 친구나 취미는 그 다음이야” 


“알았어요”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니 남이라도 나의 일보다 더 기쁘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충고를 잘 듣는다. 


 내 속에서 들리는 메시지가 있다. 어차피 헤어지지 못하고 산다면 전생에 당신한테 빚을 많이 졌나 보다, 하고 순간순간을 넘어가 주는 너그러운 마음이었으면 좋지 않겠나. 경험으로 깨닫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각자 형편과 이유가 있겠고, 각방이면 어떠랴. 후회하는 인생이면 어떻고, 후회 안 하는 인생이면 어떠랴, 다 자기가 선택한대로 그렇게 살다가는 거지. 어쩌면 그게 인생의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자 분은 해해거리면서 “우리는 헤어지지 못해서 살아요” 한다.


그게 자랑이다. 말이라도 왜 그렇게 할까?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듣는 다면 참 좋기도 하시겠다. 바꿔 놓고 생각해 봐, 네 딸이 그렇게 말한다면, 네 아들이 그렇게 산다면, 네 맘이 웃을 일이겠나? 왜 한치 앞을 못 보나.


 한번 가는 인생 인데. 언제고 피고 싶지 않은 꽃이 있던가. 언제고 지고 싶은 꽃이 있다던가. 늘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살다가 가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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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각 방(상)

 

 
 
 글이라고 쓰다 보니 이런 글도 써보게 되나 하여 쑥스러움이 앞선다. 글이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들은 말들이 쌓였기 때문에 쏟아놔야 할 때가 왔는데 고개가 갸우뚱 망설여졌다.


 글 쓴다는 어느 분한테 어떻게 나오나 반응을 보기 위해 자문을 구했다. 이런 소재로 글을 좀 써볼까 한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좀 좋은 소재를 가지고 써 보라고 한다. 소재가 좋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좋은 소재라면? 내 생각에 이 보다 더 중요하고 좋은 소재가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그래요, 나는 당신처럼 바람, 풀, 꽃, 별, 달 등 그런 소재 가지고 고상하고 우아하게 글을 잘 쓸 수 없네요. 내 실력이 요것 밖에는 안 되니까요’ 


 그 여자 분은 50대 정도였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아도 될 성 싶어서 그랬는지, 이런 저런 말끝에 대뜸 하는 말, “저는 남편과 각방 써요, 20년도 넘었어요.”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놀래가지고 “한 집에 같이 사세요?” “그럼요” 


“아니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이유는 없어요, 우린 그래요, 부부간에 정은 좋아요, 그런데 각방 써요.”


약간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무슨 소리인가? 내 계산으론 앞뒤가 안 맞는다. 


 여러 해 전 그때가 82세라는 한국 할머니를 만났다. 역시 무슨 말 끝에 “난 부부간에 각방 쓴지 40년도 넘었수” 아주 양양한 어감 속에 자랑까지 들어 있는 듯 했다. 


남편 되는 할아버지는 살아 계시고, 아픈 데가 전혀 없는 아주 건강한 분이시라고 했다. 


“아니 할머니가 그때 40대 정도였을 텐데 한참 젊은 나이잖아요? 왜 그렇게 일찍 각방을 쓰시게 되었어요?”


“젊었을 때 바람 피워서 정 떨어져 그런가 봐”라고 하셨다. 


“그럼 그때 이혼을 하시지 그랬어요?”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줘요? 절대로 안 해주지, 내가 어떤 여자라는 걸 죽을 때까지 보고 알라는 말이지”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살결이 뽀얗고 고우며, 통통하고 예쁜 후배 하나는 “저는 각방 쓴지 오래 됐어요, 다른 방에 가서 옷 두껍게 다 껴입고 문 잠그고 자요” “아니 왜?” 


“젊었을 때 큰 상처들을 받아서 그런가 봐요, 한 집안에서 같이 밥 먹고 사는데 대화는 안 해요, 여름 같은 때 남편의 살결이 어쩌다 제 팔뚝에라도 스치는 순간이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아요” 


“오 마이갓” 어떤 큰 상처들이 있길래.... 풀고 살던지, 이혼을 하던지 하지. 나는 내 아들이 혹시나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까 벌컥 겁이 났다. 부부간 문제는 부부간 외에 아무도 모르니까.


 내가 아는 분은 60을 훌쩍 넘겼다는데, “우리는 자식 셋만 낳았지, 헛 살았어요, 방이 어디 있습니까? 저보고 거실 귀퉁이서 자라고 거기다 이불 깔아줘요” 거기에 가관인 것은 부인이 친구들한테 우리는 잠을 같이 안 잔다고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 얘길 들은 부인의 친구는 자기 남편한테 이야기를 해서, 그 남편이 결국은 이 분한테, “야 너는 한 집안에서 별거하고 산다며?” 남자의 기를 죽이고, 자존심 묵사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부인은 부부간에 한집에서 남처럼 사는 것이 요조숙녀인양 자랑이라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니, 말이나 하지 말 일이지, 그 분은 죽고 싶다고 한다. 바람을 피웠었느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그 무슨 풀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나? 


“도저히 못 살겠으면 갈라져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도 안 변하고 너도 안 변한다.” 인생의 강을 건너기가 참 쉽지 않네. 


 어느 분은 한 침대 한 이불 속에서 잠은 자는데, 각자 반듯이 누워 서로를 하나도 안 건드리고 잔다고 한다, 매트리스를 일인용 두 개를 나란히 붙인, 그러니까 한 사람이 움직여도 옆의 매트리스가 흔들리지 않아서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기에는 한 이불 속 한 침대에서 자는데 결국은 뭔가? 우리가 남이가? 


 엊그제 만난 분은 “저는 부부간에 정은 좋은데, 각방을 써요” 실실 웃으면서 말한다. 누가 물어봤나? 어쩌라고? 나는 이런 일로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 이야기 하다 보니 우연히 나온 말이지, 아무리 가까워도 각방 쓰는지? 아닌지?를 왜 물어 보겠나? 나한테서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내가 기분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역지사지로 내가 각방 쓴다고 하면 그는 기분이 좋은가? 사람 심리를 참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남의 일이라도 열 받아서 뚜껑 열린다. 따지고 보면 살 날이 많지 않은데.


 입장 바꿔서 내 아들이 결혼했는데, 각방을 쓰고 산다면 내 마음이 좋은가? 그게 정상인가? 내 딸이 결혼해서 각방을 쓰고 산다면 내 맘이 어떨까? 내 자식들은 각방 쓰면 안 되고, 나는 되고? 그런 게 어디 있어. 


 한국에서 부부들 반 이상이 ‘따로국밥 잠자리’라고 가정상담사들의 증언이 ‘아침마당’에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하도 각방 각방 하니까, 취미 때문에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 몇한테 일부러 “너 부부간에 방 따로 쓰니?” 물어보니까 외국인들 특유의 몸짓으로 고개를 갸우뚱 양 어깨를 으쓱 올리며 “No”라고 한다. 


 내 해석으론 ‘부부가 왜 방을 따로 쓰니? 어떤 땐 그런 때도 있지만...’쯤으로 들렸다. 이런 예가 더 있지만 생략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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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집장을 아시나요?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은 배토롬한 맛의 집장! 


집장을 아시나요? 고추장도 아니고 된장도 아닌, 청국장도 아니고 쌈장도 아닌, 집장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 고향에선 일명 밥도둑이라 불린다. 

 

 

 


캐나다로 이민 와서 한 5년쯤 되었나? 토론토에 정착하고 xx몰 안의 커피샵을 운영했었다. 어느 날 가게에 세련되게 차려 입은 40대 중반의 아시안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왔다. 대번에 한국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명품핸드백 루이비통에 폴로 티셔츠, 화려한 장식의 청바지… “한국 분이세요?” 하며 반갑게 물었더니, 그분은 “네, 캐나다에는 언제 오셨어요?” 하며 대답과 동시에 미소 띤 얼굴로 되물어왔다. 


“한 5년 돼가요”하니까 “요즈음 비즈니스는 어떠세요?”하며 또 묻는다. 그 분의 음성과 억양이 꼭 내 고향 분 같아서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묻는 순간 그 여자 분도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똑같이 물으면서 우리는 서로 생각이 같았다는 듯 사뭇 깔깔댔다. 


 왜? 고향을 묻는가? 고향! 고향이 뭐길래.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왜 이렇게 약해지는 걸까, 마음이 확 끌리는 그 무엇이 있다. 고향이란 내가 태어나 자라난 곳을 말함인데, 고향사람이라고 하면 생판 남이라도 동기간 같은 어떤 진한 피 같은 것을 느끼게 됨은 무엇 때문일까. 


 같은 하늘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물줄기에서 나오는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음식들을 해먹으며, 같은 소재를 가지고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함께 가슴 아파하고, 좋은 일에는 함께 기뻐해주는 그래서 고향사람이 아니겠나. 


 이역만리 캐나다에 와서 충남 보령 사람을 만나다니 동기간을 만난 양 가슴이 설레었다. 서로가 이민생활의 애환들을 하소연도 하고, 별의별 얘기를 다 하다가 어느새 우리는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의 음식얘기에 다다랐다.  


호박지(늙은 호박으로 담는 호박김치), 나문재나물, 남포고구마, 꼴뚜기젓, 너무 맛이 있어 혀가 놀랜다는 곤쟁이젓 등, 역시 먹는 얘기로 꽃을 피운다.  


그분은 “우리 보령의 별미는 집장이잖아요? 늦가을이면 우리 동네 집집마다 배토롬한 집장에 밥 비벼 먹던 그 맛을 아시죠? 꼭 다시 먹어보고 싶어요.”하며 내가 긴 세월 동안 잊고 있던 추억의 집장 맛을 일깨워 주었다.


 배토롬하다는 말은 사전에는 없지만, 고향 분들은 집장 맛을 표현할 때면 으레 배토롬하다는 말을 쓴다. 내 고향에서만 쓰는 독특한 사투리이다. 


 “맞아요. 저도 많이 먹었었어요. 배토롬한 집장 맛이 기막히지요. 여름에 먹던데요, 우리 할머니께서는 메주가루에다 보릿가루, 콩가루 등에 찰밥을 버무려, 전날 떠 놓았던 정화수를 붓고 걸쭉하게 반죽하여, 썬 무지, 고추 등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하여 항아리에 담으시던데, 노골 노골하며 달짝지근하고, 심심한 듯 감칠맛 도는 집장을 담그셨지요.” 나는 추억의 집장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갔다.


 “두엄 속에 넣어두는 기간이 있던데, 8일인가 9일인가? 저는 잘 모르지만 너무 빨리 꺼내면 설어서 제 맛이 안 나고, 기간이 지나면 재 넘어 갔다 하여 시어져서 못 먹는다고 하데요. 중요한 건 꺼내는 때를 꼭 맞추어야 폭 익어서, 잘 발효되고 알맞게 숙성되어 배토롬한 맛의 집장이 된다고 하데요. 영양도 만점이래요. 정말 먹고 싶네요.” 나는 말하면서도 예전에 집장을 먹던 맛이 입 속에서 달갑게 맴돌고 있었다.


 농사 짓는데 거름(비료)으로 쓰기 위해 여름에 풀들을 잔뜩 베어다가 쌓아서 썩히는 두엄이 있다. 풀들이 썩는 두엄 속의 열기를 이용해 파묻어 두었던 집장 항아리를 두엄을 헤치고 꺼내는 날은 이웃들과도 정을 나누는 작은 잔칫날이다. 


할머니는 그 항아리에서 집장을 퍼서 다른 항아리들에 옮겨 담고, 그 중에서도 조금 큰 항아리는 큰집(우리 집)것, 좀 작은 항아리는 작은집 것이라 해 놓고,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에게도 한 사발씩 나누어 준다. 내 고향의 풍습이다.


항아리 속에 붙어 남아있는 집장을 모두 긁어내는 일은 우리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항아리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집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큰 어미야, 저쪽도, 요쪽도” 하시면서 나무주걱으로 싹싹 훑게 하신다. 


 집장은 할머니가 평생을 정성으로 담던 빈틈없는 정확함이 들어있음을 엿보았다. 요즈음 흔히 있는 말랑 말랑한 플라스틱으로 된 알뜰주걱이 그때 있었더라면 항아리 속을 긁는데 얼마나 좋았을까. 고무장갑이나 일회용 플라스틱 장갑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새 작은 어머니는 밥 한 사발을 가져와 항아리 속에 부어 밥으로 집장을 닦아내다시피 주걱으로 비벼내면,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캐나다 땅에 나와 산지 어언 삼십여 년, 환갑을 맞이하는 이 나이에 나는 나의 세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또 전수시켰던가? 어렸을 때 보았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가도 이렇게 눈 속에 각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거늘, 자녀들에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외국 땅에서의 뿌리 교육, 무엇을 전수시켜야 할 것인가, 캐나다는 다문화로 이루어진 사회, 복합문화 속에서 아차 하면 남들보다 뒤떨어지게 된다. 이민 1세들이야 몸으로 고생하며 산다 할지라도, 2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포로로 붙잡혀 오지 않았는데 노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선택하여 온 캐나다 땅, 내 자녀들이 우뚝 서야 한다. 온갖 음란물과 마약, 총기가 노출되어 있는 북미, 아차 하면 이민 와서 고생한 보람이 물거품이 된다. 한 순간도 자녀들에 대한 마음을 놓으면 안 될 것이다. 


외국 땅에서 사는 한인 2세, 내 자녀들은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사춘기를 겪으며 자각의 고통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그들을 감싸 안으며, 마음 문을 열고 소통해야 한다. 


올바른 정신으로 똑바로 살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이 이제는 집장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로 풀이된다. 


 머리카락이 음식에 빠진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긴 흰색 광목 앞치마를 친 두 며느리에게 집장은 이렇게 담아야 한다고 자상하게 말씀하시며, 보령의 별미인 집장을 전수시키려고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배토롬한 맛의 집장은 충남 보령의 꼿꼿한 자존심이며, 보령에서 만이 먹어 볼 수 있는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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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놀아도 거기 가서 놀아요

 

 
 “뱃살 빼고 싶으시다면서 집에서 복근 운동하게 되나요? 집에서 혼자는 잘 안돼요. 놀아도 태권도장이나 헬스클럽 가셔서 놀아요, 운동하는 사람들 있는 데로 가야 해요. 처음에는 몇 번 정도 해보고, 쉬면서 남들 하는 것 구경하다가 또 복근운동 몇 번 해보고, 놀다가 또 하고, 놀다가 다른 운동도 해보고, 이 운동 저 운동 몇 번씩 여러 번하고 놀다 오세요, 놀아도 거기 가서 놀아요, 뱃살이 안 빠지고 배기나요? 나이 들면 허벅지 종아리 근육이 자연적으로 다 빠지는데 근육 좀 올리시고요, 그래야 무릎 안 아프고 허리 안 아파요, 근육이 빠져서 허리 무릎 아픈 거예요. 보약보다 더 좋은 운동을 왜 안 하세요?” 


한국의 전 국가대표 복싱선수 김호길씨의 말이다. 옳으신 말씀! 뱃살을 빼려면, 또는 허벅지 근육을 튼튼하게 하려면, 놀아도 거기 가서 놀아야 한다. 
헬쓰 클럽에 가면 뒤쪽 큰 벽 중앙에 “NO JUDGEMENT”라고 써있다. 판단하지 말라! 누가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순간 참 재미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굽실굽실하게 퍼머한 긴 머리의 뒷모습이 꼭 여자인줄 알았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온 몸은 근육덩어리였다. 짝 달라붙는 짧은 팬티에 윗옷은 소매가 없고 옆구리가 탁 터진 펄렁대는 옷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온 몸이 근육 덩어리인가? 맨 먼저 자전거 타기에 올라서더니 손목에 끼고 있던 고무줄을 탁 빼더니 머리를 오지게 묶고, 다섯 개의 손가락 부분이 잘린 장갑을 두 손에 탁 끼더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데, 뒤로 구르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빨리 한 20분 이상. 그러더니, 러닝 머신으로 바꿔 탄다. 그런데 뒤로 걷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빨리, 오마이 갓! 슬금슬금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함을 넘어선다. 


속으로 놀라기만 하다가 구경만 해서야 되겠나? 이제는 나도 좀 움직여야지. 운동기구마다 조금씩 맛을 보며, 신체 부위에 따라 단단해지고 싶은 곳에 집중공격을 하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 스스로 배수진을 쳐본다. 운동기구 한 개마다 10분 이상씩이다. 


 댄스를 잘하고 싶은데 레슨만 받는다고 잘 되지도 않고, 혼자서 연습한다고 늘지도 않는다. 댄스연습장엘 가야 한다. 놀아도 거기 가서 놀아야 한다. 남들 땀 흘리며 연습하는 것도 보면서 자극 받으면 욕심도 생기고, 한쪽에서 댄스 선생들이 가르치는 것도 눈 여겨 보면서 따라서 해보고, 쉬었다 또 해보고, 놀다가 또 해보고 거기서 살아야 된다. 거기 가면 댄스에 관련된 얘기들만 하니까. 춤 잘 추려면 거기 가야 한다. 


 말 잘 타는 것? 마찬가지다. 말똥 냄새 맡으며 말 털 긁어주고 마장에서 살아야 한다. 말 타는 거? 그냥 잘 타지는 게 아니다. 한 30분 신나게 타고 와서 말 하고 놀다가 또 한 번 타고, 그래서 몇 번 타고 와야 한다. 되도록이면 일주일에 서너 번씩이라도 가서, 거기 가면 말과 말 타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들만 하니까. 시간과 열정, 돈은 말해 무엇 하리. 투자 없이 성공할 수 있나? 


그 동안에 말똥도 많이 치웠다. 갓 태어난 귀엽고 사랑스러운 말 새끼도 많이 보고. 나의 애마 베엘(말 이름)의 눈을 보면 ‘내 등에 올라타라,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 줄게, 말고삐만 놓치지 마라’ 하는 눈빛이다. 말 발굽에 밟히는 낙엽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색소폰 잘 부는 것? 마찬가지다. 무슨 무슨 색소폰 동호회에 가입하여 색소폰 부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연습하고, 모르면 물어 보고, 물어오면 가르쳐 주기도 하고, 색소폰 정보를 서로 나누며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놀더라도 그들 있는데 가서 놀아야 한다. 내 말이.


그들은 만나면 색소폰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이고 거기서 프로가 나오니까.


 “어떻게 하면 옷 좀 멋지고 세련되게 입을 수 있어?” 몰(Mall, 백화점)의 화장품가게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물어본 말이다. 


“Mall 에서 살아야 해요” 


Mall에서 살다니. 나에게 어울릴만한 스타일을 눈 여겨 보고 이거다 싶으면 입어도 보고, 몰 안에서 빙빙 돌며 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 그도 맞는 말이다. 돈 들여 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 할 길이다. 


 머리도 예쁘게 하려면 미장원엘 자주 가서 스타일도 바꿔보고, 짧은 머리도 해보고, 길면 긴 머리도 해보며, 머리카락 관리라던가 머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되니 미장원엘 자주 가서 거기서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다. 그들의 대화는 주로 머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할 테니까. 시간과 돈 당연 투자.


 글을 잘 쓰려면 글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데로 가야 한다. 그들은 주로 글 쓰는 일, 문학에 관한 말들을 많이 할 테니까, 문학에 관한 많은 정보도 나누고, 무엇이든 영양가 있는 무엇이라도 건져올 테니까, 시간과 관심, 점심값 커피값 등등 역시 당연 투자지!


“놀아도 거기 가서 놀아요”라는 말, 새겨볼수록 참 명언이다. 건져올 것이 없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모임은 속 빈 강정일 뿐이다.


꿈은 클수록 좋다는데. 나도 이제 위에 나열한 것들에 대하여 프로로 가는 꿈을 야무지게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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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7
김호길! 한국 복싱계의 숨은 거성

 
 

 “아니 나이 드신 분들이 아침에 운동 삼아 걸으러 나가신다면서 왜? 준비운동을 안 하고 나가신대요? 걷다가 넘어졌다느니, 다리가 푹 주저앉더라니, 왜들 그러세요? 준비운동 하는데 5분도 안 걸려요”
 한국의 전 국가대표 복싱선수 김호길 씨의 간절한 말이다.


 “준비운동을 어떻게 하는 건데요? 시범 좀 보여줘요”


 보니 발목 돌리기부터 시작해서 보건체조 비슷하게 머리끝까지 하는 운동인데, 5분이 채 안 걸렸다. 걷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준비운동이라는 것이다. 단 10분을 걷더라도, 30분이나 혹은 한 시간을 걷더라도 준비운동을 꼭 하고 가라는 것이다. 


 아는 것 같은데도 몰랐다. 모르니까 안했고 확신이 서지 않으니까 못했다.  나이 들어서 넘어지면 인생 거의 끝장이다. 내가 아는 할머니 한 분도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셔서 남들이 다 부러워했는데, 걷다가 넘어져서 집 밖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에서 못 나오신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참 가슴 아픈 일이고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내가 벌써 70을 눈앞에 두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특히 70을 넘은 분들은 무릎이 약하다면 바닥이 푹신한 운동화 신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딱딱한 시멘트바닥을 걷기보다는 잔디밭을 걸으라는 것이다. 토론토에는 공원이 많고 공원 안에는 잔디로 된 운동장이 많기 때문에 푹신한 잔디 위를 걷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이 들면 왜 허리 아프고 양 무릎이 아프냐 하면 하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걷는 운동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분은 밤잠을 충분히 안 자고 아침부터 5-6시간씩 산행하러 간다고 하는데, 그건 좋은 운동 방법이 아니고 잠을 충분히 자고 나서 운동을 하는 것이 순리라고 한다. 


 여자들은 나이 들면서 입맛은 날로 좋아지고 위 뱃살 아래 뱃살이 때로는 가슴보다 더 나오는데 어찌하면 좋으냐고 하니, 복근 운동을 하라고 한다. 


 “간단하면서도 아주 쉬운데 왜 안 하세요?”


 “몰라서 못하니 알려줘요” 시범을 보인다. 살아 갈수록 모르는 것이 이렇게 많다니. 턱턱 막힌다. 비만의 비늘들이 아침마다 껍질 벗는 소리를 미리 듣는다.

운동도 나이에 맞게 해야 한다고 한다. 


 “70대 된 분이 20대 사람들이 하는 운동을 한다면 몸이 말을 듣나요?”


 사람마다 건강 비결이 다르겠지만, 아침마다 1시간 정도 땀이 날 정도로 걷기 운동하면 좋을 것이라고 한다. 땀이 안 나면 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몸이 후끈후끈해지며 땀이 나고 면역력도 올라간다고 한다. 눈 오고 비오는 날은 실내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으냐며 정신이 문제라고, 운동은 매일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체중 빼는 거요? 도사가 여기 있잖아요? 복싱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체중감량에는 도사들 이지요. 2일 만에 5Kg은 확실히 뺄 수 있습니다.”


 맞다, 복싱선수들이 출전하기 전 체중 감량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먼 나라 신기루 같은 이야기를 쫒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걸을 때면 무릎 한쪽이 가끔 아! 소리가 나온다는 남편, 마사지를 여러 번 받아도 안 낫고, 침도 그때 뿐, 카이로프랙터에 가서 치료를 여러 번 받아도 안 낫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하니, 우선 손을 따뜻하게 비벼서 무릎 주변을 살살 마사지 해주고, 그 곳을 깨끗하게 한 다음 안티푸라민(소염진통제)을 펴서 고루 고루 바르고 문지른 다음 뜨거운 물수건을 대고 두 손으로 살살 눌러 주라는 것이다. 


 집에 와서 해보니 남편은 좋아짐을 느낀다고 했다. 앞으로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여러 날 하면서 걷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안티푸라민은 특히 운동선수에게 한국이 만든 명약이라고 했다. 복싱선수들이 주먹으로 얼굴의 여기 저기 특히 눈을 얻어맞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시퍼렇게 멍이 져 뚱뚱 붓는 일은 예삿일인데, 안티푸라민 바르고 자고 나면 거의 낫는다고 했다. 부기 빼는 데는 최고라고 했다.


 복싱선수들을 비롯하여 운동선수들의 운동가방 안에 안티푸라민은 필수 중에 필수라고 한다. 눈 주변에 바르면 가끔 눈에 들어가 따끔 거리지만, 한 1분만 지나면 괜찮으니 눈 감고 참으면 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낯선 남자와 단둘이 있게 되면 핸드백도 있고 좀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혹시라도 가까이 와서 무슨 수작이라도 하려고 한다면? 대비책을 가르쳐 달라 하니, 


 “한방! 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방에 끝내주는 방법이지요, 가르쳐드릴게요” 


 “와우 한방!. 당장 가르쳐 줘요.”


 요즈음 한국에선 여자들도 호신용으로 복싱을 많이들 배우고, 다이어트 복싱배우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구미가 당긴다. 


 한국의 전 국가대표 복싱선수 김호길씨가 한국에 있을 때, 국가대표 복싱선수 송창호, 송광식, 백승영, 김찬수, 유장현 등을 배출해내고, ‘동양 웰터급의 쿠에바스’로 불리며 프로에서 한 획을 그었던 박정오도 만들어냈다.


 후배를 많이 양성해내다 보니 ‘복싱선수 제조기’라는 닉네임을 달았고, 1990년도에는 한화그룹 김승연(전 복싱협회장) 회장으로부터 국가 대표 선수를 가장 많이 키워냈다 하여 공로상을 받았다. 


 캐나다에 와 살면서도 흑인 복싱선수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서 시합을 하는 등, 국위선양에도 앞장서는 그는 인정도 많다. 이런 복싱선수가 토론토에 살고 있음이 사뭇 자랑스럽다. 


 남에게 주기를 그렇게도 좋아할까, 다줘! 다줘!. 이름있는 좋은 운동복들도 누가 달라고 하면 주어버려서 제대로 된 운동복도 없다는, 다 내려놓은 김호길!


 하나님이 어서 오너라 부르시면 그땐 가야지 별수 있냐며, 그것 말고는 육신과의 싸움에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신념의 눈동자엔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작년에 대장암 3기 수술을 받고도 그까짓것 하면서 초연(超然)해버린 그는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가 넘친다고 한다. 결국 나이 들면서 건강할 때 운동해야 하며 운동만이 보약이라는 그 만의 명언을 내 귀에 걸어 주었다. 


 요즈음 한국에서 인기 있는 효소가 들어 있는 막걸리, ‘산삼 막걸리’(회사: 해가든 대농바이오 우리 산삼)의 홍보대사로 한국에선 물론 캐나다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토론토에도 산삼 막걸리가 곧 들어온다고 한다. 


 이제는 나도 별수 없이 남루한 깃발을 흔들며 또 다른 사막을 걸어가야 하는 열사(熱沙)의 한 마리 낙타가 되어 장정(長征)에 첫발을 내디뎌 본다. (2017,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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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내 고향

 
내 고향

 

 

삽살개도 마루 밑 그늘 찾아 
낮잠 즐기는 8월
장독대 돌틈사이로 피어나는 
난쟁이 채송화가 귀여워
고개 떨군 키다리 노랑국화 
대문 밖에서 허리 매고 
우리 아버지 퇴근 기다리는 곳

 

장항선 완행열차는 목을 빼고 
소리소리 지르면
우리집 텃밭 언덕에 
황금색 호박꽃들 함빡
성주산 너머 매지구름 몰려와 
여우비 한줄기 뿌리고 가면 
밤나무 가지에서 
송충이가 꿈틀 꿈틀 

 

포기 째 강낭콩 뽑아다가 엄마랑
손톱 밑이 아프도록 콩을 까서 
햇강낭콩 밥 뜸이 들 때면
분꽃향기 온 집안에 가득 퍼져 
초가집 출렁이는 곳

 

일곱살배기 여자애가 토방에 앉아 
작은돌 다섯 개로 공기놀이에 마음을 다 적신 
내 유년의 고향 

 

식구들이 오손도손 모여 앉으면 
애호박잎 찢어 넣은 구수한 된장국이 보글보글 
대천 나무장터 끝머리 비뚤어진 버드나무집 
여름 내내 매미만 목이 쉬게 노래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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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성하의 숲

 
성하의 숲 
        

 

 


창공엔 정처 없는 흰구름 한 점 
눈부신 초록 소리없이 익는다


 
한낮의 숨막히는 뜨거운 바람 
겨드랑 사이사이 수줍게 식히면서 
귀여운 새들과 재잘거림은
사랑일까 노래일까


  
황혼이 내리면 
무르익은 젖 위로 
오르내리는 다람쥐는 즐거워라 


 
종일토록 놀다가 
허기져 돌아 왔는지 
앞단추도 풀기 전 
머리를 들이미는 철없는 새들을
매양 포근한 가슴으로 다독이며 
살포한 성하의 밤바람 속에 
달빛 머금은 체온을 나눈다


 
아 ! 
그것은 불타는 모성애여! 
찬란한 성하의 숲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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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4
귀 가(歸 家)

 
귀 가(歸 家) 

 

 

 

1. 밤 11시 
일 마친 down town 
지친 버스를 기다린다. 
머 - 얼리 나지막한 언덕으로부터 
자동차 헤드라이트들이 
달맞이꽃 피어나듯 줄지어 피어난다 


  
어느새 달맞이꽃들은 
내 앞을 지나 아득히 사라져 간다 
조금은 송이가 큰 달맞이꽃이 피어난다 
이윽고 내 앞에 버스가 섰다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사람은 타고 
버스는 달린다
밤을 싣고, 나를 싣고


  
타국살이에 고달픈 영혼들이 
몸둥이는 짐짝처럼 버스에 내맡긴 채 
출렁대는 파도처럼 흔들거리며
막을 수 없는 하품과 실눈 사이로
이승의 하루가 지나려 한다. 


  
2. 밤 11시 20분 
도시냄새를 가득 싣고 온 Subway 안에서 
나는 눈물같은 시를 생각한다
3년은 세수도 못한 듯 가랑잎 얼굴의 
마주 앉은 흑인 할아버지
고기도 얹지 못한 마른 피자 한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음료수 캔 하나를 준비해 오는건데 
캔 하나의 아쉬움이 못내 아쉽다


  

3. 밤 11시 50분 
갈아탄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부슬 부슬 비가 내린다 
가로등도 차거운 이국의 거리 
자박 자박 걸어가면 
저벅 저벅 따라 온다 
내가 천천히 걸으면 
그도 천천히 걷고
내가 빨리 걸으면
그도 빨리 쫒아온다
아파트 옆 가로등 아래 
내가 슬쩍 멈추니 
그도 슬쩍 멈춘다 
용기 내어 살짝 뒤돌아 보니 
싸늘한 밤하늘에 메아리로 남는
나의 발자국 소리 
애처러운 구도의 모습으로 
길게 늘어진 나의 그림자 


  
4. 밤 12시 
아파트 로비에 들어서니 
등속에 식은 땀이 차겁지만 
기다리던 아들의 “엄마” 하는 소리 
날마다 나의 귀가는 
아픈 희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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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미소 엄마

 


  
 “애기를 갖고 싶어요.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어요.”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머금는다. 그렇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애기를 갖고 싶은 건 본능이니까.


 내 컴퓨터가 고장나면 고치러 가고, 컴퓨터에 대하여 물어볼 일이 있으면 으레 가는 한인 PC방이 토론토의 노스욕에 있다. 여러 번 가다 보니 PC방 젊은 주인남자는 물론, 그의 부인과도 정이 들어서 살아가는 깊은 이야기까지도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토론토에 일가 친척이나 친구 하나 없이 살다 보니 외로운 건 물론, 속말을 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때론 답답하며 캐나다 이민생활이 서글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민자로서 느끼는 그것을 그녀라고 못 느낄 것인가. 그런 건 다 덮어두고라도 본능 중에 본능인 애기를 갖고 싶다는 것, 나는 그 말을 어깨 넘어 남의 말로 흘려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그녀의 엄마뻘 되는 나이고 보니 엄마처럼 생각이 되어서 그런지, 간절한 말로 자기의 소원은 애기를 갖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날 밤 잠이 안 왔다. 어떻게든 그녀의 소원을 도와주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한테 갔다. 병원에 가서 검사는 해보았느냐고 물어보니, 물론이라며 철분검사는 정상이라고 하는데, 배란이 좀 규칙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러더니 “저 사람 수가 얼마 안 되고, 안 움직인대요.” 말끝을 흐리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 말은 정자 숫자가 적고, 정자가 안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어머나,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고 물으니 정자 숫자를 늘리고, 정자를 움직이게 해야 하며, 여자 배란도 규칙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이도 저도 병원 약 먹은지 한 2년 정도 되었어요.” “아, 그래요”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양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남자는 컴퓨터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다 보니 운동 부족은 물론, 햇볕 쏘일 시간도 없었을 터이고, 행동하는 것도 보면 나이든 사람처럼 굼떴다. 


 전자파 속에서 살다 보니 정자도 숫자가 줄어 얼마 안될 것이겠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도와 줄 수 있을까?


 나도 한국에서 딸 둘을 낳고, 35여 년 전에 아들을 낳고 싶은 소원이 있었는데, 내 소원을 전해들은 수양할머니께서 대장간에 가서 작은 쇠도끼를 두개를 만들어 와서, 아들 둘을 낳으라고 남편의 베개 속 깊은 곳에 넣어주었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남편한테는 아들 둘 낳을 때까지 말하지 말라 하며, 수탉 세 마리를 해 먹으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준 그 할머니의 정성때문인지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다. 그 할머니는 내가 아들 낳았을 때, 너무 좋아하시며 덩실덩실 춤추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거늘. 


 나도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었다. 백방으로 알아보던 차에 우선 내가 친하게 지내는 코리아타운에 있는 한인 여자한의원 원장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니, 특별한 처방이 있다 하며 부부에게 자기가 지어주는 한약을 먹이면 90% 이상은 애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믿을만한 좋은 비방을 알아냈으니 둘이 다 한약을 먹고, 소원하는 애기를 가져 보자고 강력하게 말했다. 


 얼마나 애기를 갖고 싶었는지 그들은 단숨에 한의원으로 가서 부부가 먹을 약을 지어 왔다. 나는 날마다 전화를 했다. 오늘은 남편 약을 잘 챙겨 먹였느냐? 자기 약은 정성껏 잘 마시고 있느냐? 하루 세 번 정신 차려서 마시느냐? 내가 그 입장이라 해도 짜증이 날 정도로 보챘다.


 가게로 가보기도 하고 수시로 전화를 해대어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늘 고맙다고 하며, 내 말에 순종하는 그녀가 복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약을 다 먹은 후 두 달쯤 되었을 때인가, 가게에 들렀더니, 그녀가 하는 말, “움직인대요, 검사를 해보았는데, 정자가 움직이고 수도 늘었다고 하네요.”


 “어머나, 정말? 이제는 됐구나, 됐어.”


 그녀와 나는 너무 기뻐서 손뼉을 치며 소리쳐 만세를 불렀다. 이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 


 “그러면 일찍들 자고 새벽에 합방하여라, 남자는 저녁에 푸욱 자고 나면 새벽쯤이 좋다는구나” 등, 환갑이 넘게 살아온 여자의 인생 선배로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말해 주었다. 


 다시 두어 달쯤 지났을까? 그녀가 하는 말, “저 임신했나 봐요” 


 “뭐라구?” 


 “전기밥솥 뚜껑을 여니 밥 냄새가 확 나면서 구역질이 났어요”


 “아, 그랬어?”


 참으로 감격의 순간이었다. 정말 임신이었다. 다달이 불러오는 배, 나는 “뒤로 서봐, 앞으로 서봐, 뒤에서 보니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모양이 딸인 것 같다. 요즈음은 딸이 금메달이란다”


 하루하루가 감사의 날들이었다.


 2010년 10월 6일, 토론토의 다운타운 세인트 마이클 병원에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3.5Kg의 건강한 딸 미소가 탄생했다. 보잘것없는 나 같은 한인아주머니도 이민와서 이런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서 만족감이랄까 작은 행복을 느꼈다. 


 우연히 이런 일을 하게 되었지만,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의 주변에는 여러 모양으로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줄로 안다. 힘든 이민생활이지만, 이렇게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나 스스로 감동이 되었다. 


 미소는 정상적으로 예쁘게 무럭무럭 잘 자라서 첫 돌이 되었다.


 “미소 예방주사는 다 잘 맞히고 있어? 우리 미소한테 한국말 꼭 가르쳐야 해”라고 힘있게 말하는데, 내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내렸다. 


 가슴 속에선 벅찬 감사함과 성취감이 잔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데, 소원을 풀고 미소를 안은 그녀의 얼굴은 함박꽃처럼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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